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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작은, 것들 [김안녕]

by joofe 2022. 4. 10.

황규백 그림

 

 

 

작은, 것들 [김안녕]

 

 

 

 

정작 날 울린 이는

손수건 한 장 내민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 혜화역 술자리에서 언니 언니 하다

택시 같이 탄 그이가 손에 쥐여 주고 간

파란색 손수건이 십 년째 땀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니

 

먼지처럼 작은 것이

솜털처럼 가벼운 것이

 

참 이상하지

 

그 천쪼가리 하나가 뭐라고,

 

손수건을 받으면

참았던 토사물 눈물 다 터져 나오고

서러움 분한 마음 봇물처럼 나오고

 

가방 속에 든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그 쪼가리 하나가 대체 뭐라서

 

       - 사랑의 근력, 걷는사람, 2021

 

 

 

 

 *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크낙한 사랑을 주고 받은 사이도 아닌데

어떤 순간 작은 사랑을 베풀어주고 간 그 사람이 소중하다거나 큰 사랑을 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손수건 따위를 건네주는 그 마음이 헤아려지고 배려했던 그 마음이 문득 떠오를 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어!

그 마음은 내 마음속에 남게 되지만 사물이 내 손에 남아 있으면 자주자주 사용하면서, 혹은 자주 들여다 보면서

따뜻했던 온기가 마음에 전해진다.

책상 서랍속에 참 좋은 사람들이 주고간 사물들을 들여다 보며 그때의 작은, 아주 작은 사랑을 만져보게 된다.

먼지처럼 작은 것이 오래된 일기장처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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