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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오리나무의 측량술을 빌려서 [손택수]

by joofe 2022. 4. 12.

 

 

 

 

 

 

 

오리나무의 측량술을 빌려서 [손택수]

 

 

 

 

 

나무 수를 세면서 길을 걷던 시절이 있었지

나무가 자(尺)여서,

삼천리 방방곡곡의 측량술이어서

심은 나무가 말라 죽어도

시린 어느 집 장작개비로 뽑혀나가도

나무와 나무 사이는 틀림없이 오 리

새 눈금이 그어져도, 눈금 하나가 지워져도

누가 뭐래도 오 리였지

오리나무는 모르면서도 여전히

오리나무이지만

나무로 길을 재던 시절은 이제 없지

오리나무들은 산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지

그래도 오리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의

간격쯤이면 좋겠네

영 볼 수 없는 당신과 나 사이에도

오리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네

아무리 먼 길도 오 리면 된다고,

오 리면 오리라고

 

                 -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

 

 

 

 

 

*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면 대화를 해야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침방울이 비말되어 감염될 수 있기에

가급적 거리를 두라는 거다.

그래도 가족은 한 집에 사니 거리를 둘 수 없고

또한 사회적 인간관계를 해칠 수 없어 만날 땐 만나야 한다.

그럼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때다.

오 리면 2Km니까 대화를 하려면 큰 소리로해야 할 거다.

오리나무처럼 홀로 제자리를 지키며

스마트폰으로 대화하고 당분간은 스스로 아이솔레이션을 해야 하다.

아, 이 고립감!

무섭기도 하겠지만 참아내고 견뎌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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