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백로가 가르쳐준 것들 [복효근]
돌아간다고도 하고, 돌아온다고도 하니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라는,
가고 또 옴의 그 무상함을 알아버린 듯
이 겨울 한 떼의 백로는
얼어붙은 저 개울을 고향으로 삼았나 봅니다
오늘
한 쌍 백로가 먹이 찾는 개울은
그래서 다 얼지는 않고
피라미 몇 마리는 제 품에 기르고 있어,
백로는
몇 번의 허탕 끝에 튕겨 올린 피라미 한 마리도
하늘을 우러러 삼킵니다
천지사방 까막까치 뛰노는 허접쓰레기는 많아도
저 붉은 발 수고로이 찬물에 담그고
모가지는 길어서
아무 데나 코를 박고
고개를 두르지 않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탐식하기엔
무엇보다 그놈의 깃털이 너무 희어서
아침 한때 사냥을 끝내고 날아간 뒤에는
내내 오지 않습니다 그때야
호동그란 놈들의 눈에 비칠 내 모습이 더 궁금하여져서
나는
또 있지도 않은 내 흰 깃털과
언젠가 있을지 모르는 내 맑은 배고픔을 떠올리며
호들갑스럽지 않게 한 자리에서
고요히 저물어 갈 것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달아실, 2017
* 붉은 손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도
찬물에 손 담그고 수고로이 산다.
인간의 존엄함은 탐식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백로도 허탕 끝에 건져올린 피라미 한마리를
하늘을 우러러 삼키는데
인간도 삶 앞에서는 공손하고 겸허해야 하는 법.
십년을 주기로 위기가 왔다가 십년을 주기로 호황이 온다.
위기에는 그저 맑은 배고픔도 견뎌야 한다.
코로나도 왔다가 간다.
갈 때까지는 조용히 참고 견디어 보자. 백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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