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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처음부터 모르는 집 [송종규]

by joofe 2022. 4. 15.

불광천의 봄

 

 

 

 

처음부터 모르는 집 [송종규]

 

 

     

 

 

  그 집의 대문을 두드렸는데 겨울이었네 대문은 닫혀있고 라이락이

지천이었네

  그 집의 문고리를 흔들었는데 캄캄한 밤이었네 다급하게 소리를 질

렀지만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네 달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봄날이

었네

 

  누군가 위협적으로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는 검고 무례한 듯 보였는

  최선을 다해 달아나고 최선을 다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네 싸락눈이

흩날리는 늦은 가을이었었네

  아무리 두드리고 아무리 소리친다 해도 그 집의 대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스쳐갈 무렵 이제 더 이상 달아나고 싶지 않았다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었는데, 한 천년

 

 

  나는 가끔씩 그 집 앞에 멈춰서는 날들이 많아졌네 그 집의 낡은 문

고리를 흔들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네

  꿈결인 듯 하기도하고 그 봄날 저녁인 듯 하기도한데

  누군가 삐거덕 문을 열고 나왔으면 하고

  손을 잡고 세월의 아랫목, 그 곳으로 데려갔으면 하고

 

  그 것은 세월이었을까, 당신이었을까

  그것 때문에 나는 숨이 차도록 달렸고 뒤꿈치를 들어올렸고 최선을

다해 봄밤을 배반 했다네 많은 것들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갔네 나

는 처음부터 당신을 알지 못했는데

 

 

  사실, 인기척 없는 봉분 같았던 그 집은 처음부터 없었다네

  당신이 허구인 거처럼, 삶이라는 이 모두가 결국 허구인 거처럼

 

                  - 무크지 『세종문학』 2019년 재창간호 

 

 

 

 

 

* 사월 첫째주에는 패딩을 아직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사월에는 눈이 온 적도 있는 터라 봄인 줄도 모르고 청양 칠갑산을 갔었네.

벚꽃길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서늘한 산기운을 느꼈네.

사월 둘째주엔 서울 불광천에 갔다가 뜻밖에 화사한 벚꽃 잔치를 보았네.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나 봄이 빨리 지나간다고?

어제까지 벚꽃들 하르르 웬만큼 낙화하고 라일락 꽃향기가 제법이더니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아니 봄이 간다.

눈 깜짝할 새에 봄이 왔다가 바로 가버리다니.

처음부터 모르는 봄 같이 꿈결처럼 가버린다. 아쉽다! (4/13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