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바깥 [신철규]
낮달
보라색 보자기를 든 여인이 사거리에 서 있다 꼼꼼히 싸
맨 보자기 안에는 쟁반에 담긴 커피포트와 찻잔 두 개가 있
을 것이다 보자기 매듭이 토끼 귀처럼 쫑긋 솟아 있다 그녀
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정면을 바라보는 것도 바닥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을 힐
끔거리며 지나치는 행인들을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
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귀밑머리를 가만히 쓸어 올려 귀 뒤
로 넘긴다 오래전 소중한 사람을 배웅하고 난 뒤 한참을 돌
아서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 뺨이
파인 낮달이 허공에 떠 있다 그녀 앞 횡단보도가 한없이 펼
쳐진 계단처럼 누워 있다 멀리서 불법 유턴을 하고 쏜살같
이 달려온 파란색 소형 승합차가 멈춘다 그녀는 그제야 고
개를 들고 차에 올라탄다 그녀가 떠나고 다방 안 낡은 어항
속의 금붕어는 숨이 가쁜지 수면 밖으로 입을 내밀고 있다
흐린 유리창에 붙은, 다방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셀로판
지의 좌우가 뒤집어져 있다 반쯤 남은 커피는 식었고 가라
앉아 있던 프림이 떠올라 달무리가 진다
- 심장보다 높이, 창비, 2022
* 다방세대는 아니지만 다방을 자주 드나들긴 했다.
커피숖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다방이 생겼을 때의 세대라고 해야할 게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중고생들을 가르치며 용돈을 짭잘하게 벌었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과외금지령이 떨어졌다.
대신에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용돈을 주었다.
미아리 쪽 북공고 앞에서 한달을 매일 아침 교통정리하고 일당 오천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돈이긴 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학생들은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니까 북공고 길건너에 있는
별셋다방에 가서 쌍화차를 마셨다. 노란 계란이 동동 떠있어서 참 좋았다.
누나, 왜 다방 이름이 별셋다방이예요?
- 응, 우리 세자매가 하는 다방이야!
학교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고 딱히 커피 마실 일이 없는 터라 한달동안만 애용했던 다방이었다.
광화문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는 인왕다방이 있었다.
그냥 아무 일 없어도 각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이 들리던 다방이었다.
가끔 공업수학 공부하러 가서 앉아있기도 했다.
팝송이 흘러나오다가 공부에 집중할 때는 팝송이 들리지 않았다.
나랑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누나가 다방 주인이었다.
아쉽게도 군대 갔다오니 다방이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광화문을 지나며 그 건물 2층을 바라보게 된다.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은 대,여섯명 빼곤 모두 진학을 했는데
가장 가난했던 서군은 동대문에서 알루미늄 샤시를 팔았다.
나는 학교가 가까운 곳에 있어 가끔 동대문에 들렀다.
그러면 서군은 국영수를 공부하다 날 보고 어딘가 전화하면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들고와
잔 커피를 따라주었다. 움직이는 다방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일년, 서군은 창덕궁 옆에 있는 S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서로 연락이 끊어져서 안부가 궁금하지만 잔 커피를 나누던 그 때는 아름다운 청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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