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아니래도 그카네 [박제영]
띵똥! 띵똥!
누구세요
택뱁니다
혹시 니 귀순이 아녀?
워매 봉창이 정미소집 김봉창 맞지?
고향 서산서 둘째라면 서러울 부잣집 아들 김봉창이 가
리봉동까지 와서 택배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귀순 씨는 도
무지 믿기지 않았는데,
서산서 젤로 이뻤던 마귀순이 가리봉동 반지하방에 산
다는 게 봉창 씨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는데,
뭔 택배길래 함흥차사여, 뒤늦게 따라 나온 가만덕 씨,
보리쌀 훔쳐 먹다 들킨 새앙쥐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
을 번갈아 보다가 모른 체 하는 것인데,
뭔 택배래? 누가 보냈데?
큰애가 겨울 옷 좀 보낸다카더니
그날 이후 가만덕 씨 툭하면 귀순 씨를 놀려먹는 것인데,
첫사랑 봉창이 오늘은 안 왔나?
봉창이 아니래도 그카네, 첫사랑 아니래도 그카네
귀신이 조화라도 부린 것인지
그카네 그카네 하는 날이면
우리 만득아 우리 구신아
그카면서 봉창이 훤할 때까지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니
이 부부 속맘을 누가 알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안녕, 오타벵가, 달아실, 2021
* 사랑이든 우정이든 세월이 조금 흐르고 난 뒤에 보면
사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도 택배를 할 수 있고
한때 이쁘거나 건강하던 사람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심성이 변했다면 많이 변한 것이고 심성은 그대로라면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깢 잘 살고 못 살고가 뭔 대수인가.
덜 이뻐지면 어떻고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가.
세월이 가져다준 주름살 같은 것이라면 전혀!라 할 수 있다.
어디선가 어느 골목에선가 우연히 마주쳐도 반갑다, 친구야
반갑다, 누구야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다.
소식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은 아직도 내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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