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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이방인 [장혜령]

by joofe 2022. 4. 24.

쇼생크 탈출

 

 

 

이방인 [장혜령]

 

 

 

 

빛은 잘 들어옵니까

 

이상하지,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그리고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불 꺼진 독방의 내부는 

누군가 두고 간

볼펜 잉크처럼 캄캄하다는 거,

의도 없이도 흐른다는 거

 

처음 타본 비행기와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

 

그의 휘파람을

존경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크고 두터운 손으로, 아버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바람은 불어옵니까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

빨래를 솥에 넣었고

예수기도회의 붉은 자전거 옆에는

북경반점 오토바이가

 

모든 질문엔

전학생의 시점으로

생각했지

 

경도와 위도 선상에서

초조해질 때마다

별들 사이에 길이 있다는 건, 더 확고해졌으니까

 

동료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삼키는 연습을 하는

수배자처럼

 

배후가 없는 비밀이 몸속을 떠돌고

 

깡통 속엔

씹다 뱉은 성냥들이

붉게 차오르곤 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들판 같은 책상 위로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간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

 

이상하지,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

 

어디선가

새들의 농담이 들리고

 

그의 내부를 바라본 것은, 저 나무가 유일하다

 

        -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문학동네, 2021

 

 

 

 

 

 

* 수인의 독방은 늘 세입자가 바뀌겠다.

창밖의 나무가 들여다보며 아, 오늘 새로운 수인이 들어왔네! 하겠다.

나무에게는 이방인인 수인.

오,륙년 전 회장이 잘못한 일이 있어 수인이 되었다.

생전 파출소 문고리도 잡아보지 못한 나는 면회를 가야했고 교도소 문고리를 세번이나 잡아보았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라고 물을 수는 없었으니

뭐라고 할 위안의 화법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회사가 돌아가는 이야기 조금 하다가 더 할말이 없어서 '혹시 읽고 싶은 책은 없으십니까?' 했더니

이원복의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를 넣어달라고 한다.

소일거리로는 두툼한 책이 나을텐데 만화를 넣어달라니 넣어드렸다.

독방의 구조를 알 수 없으나 별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듣고, 코끝으로 바람의 냄새를 맡고,

창문틀로 기어다니는 무당벌레를 바라보며 깊은, 아주 깊은 사색에 잠기며 하루를 보냈을까?

 

왔다가 (언젠간) 사라지는 이방인에게 나무는 무슨 화법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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