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생필품 [서정학]
감자 두 개와 한 줌의 쌀, 파 한 쪽이면 하루가 저
물었다. 계란 한 개에는 달콤한 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하루 치의 전기 요금은 운동장 한 바퀴를 땀
나게 뛰는 것으로 충분했다. 가끔식 비가 내렸고 바
람이 불었지만 쓰레기는 목요일 저녁 늦게나 치워졌
다. 발정 난 고양이들이 울어대는 화요일 골목에 가
로등이 켜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엉켜 붉
고 뜨거운 배기가스를 뿜었다. 너의 손에 든 비닐봉
지가 부스럭거렸다.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자 우
유와 식빵 한 조각, 고기 한 근과 지루하기만 한 버
섯이 하루를 삼켰다. 월요일 아침은 떠들고 일요일
저녁은 조용했다. 화장실에 앉아 떨어지는 수요일을
보며 질 낮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었다. 걱정은 조미
료처럼 달콤하고 텔레비전은 너처럼 행복했다. 할인
쿠폰은 드라마틱하였고 위태롭다. 어제 지루했던 삶
은 오늘, 마찬가지였고 내일 저녁에는 쓰레기가 말
끔히 치워질 것이었다.
-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사, 2017
* 얼핏 읽으면 오스카상을 네개나 받은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된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라는 공간이 나오는 건 빈부의 격차가 많이 심해져서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를 조명하는 듯 했다.
이 시에는 생필품이 아주 약소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나에게도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가난의 급은 좀 다른 것 같다.
칠십년대, 노랗게 도금된 도시락에 계란 하나 부쳐 넣어주는 집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주차장은 커녕 차를 가지고 사는 집이 없었다.
우유, 식빵, 고기 한 근이란 건 귀했고 국민학교 사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우유란 게
등장해서 판촉용으로 나온,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먹어본 기억이 난다.
두루마리 화장지란 건 없었고 신문을 구깃구깃해서 사용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별로 없어서 동네에 그저 몇 집 있어서
타잔이나 연속극 '여로'를 볼라치면 텔레비전 있는 집으로 모였었다.
그땐 흑백 텔레비전이고 십사인치 정도 되는 작은 화면이었다.
세월이 변하여 부자나라에 속하게 된 우리나라가 아직도 빈익빈이 되어
가난을 세습하고 기회와 평등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음이 참 안타깝다.
적어도 의식주와 생필품은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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