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산책법 [조온윤]
종점까지 걸었다
간혹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다
쓰러지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저 우뚝한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기 위해 축조되지는 않았듯이
인간을 흙으로 빚는 건 마음을 뭉그러뜨려도
모종의 손길들로 하여금
물성을 회복하게 하였기 때문
손목에 생긴 실금 위로 펴 바르는 회반죽이
뜨듯한 입김을 맞으며 천천히
굳어가는 동안
한낮이 어깨를 흔들어도
일부러 눈을 뜨지 않고
죽은 듯이 보내던 인고의 시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숨을 참아보아도 정말로
죽어 있는 시간은 없었다
먼 훗날의 복원을 위해 흙 속에
묻어두기로 한 꿈은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었던 복층 건물이
미래를 지향하는 설계를 꿈꾸며허물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부서지기 위해 지어지고
지어지기 위해 부서지는 모래성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종점까지 걸었다
종점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끝까지 걷게 했다
잠시 무너지고 나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 햇볕 쬐기, 창비, 2022
* 어릴 때 비위가 약해서 먹는 것도 가려먹고 버스를 타는 걸 무서워 했다.
초등학교 때는 걸어서 두시간 거리의 소풍지를 걸어갔지만 다리가 참 아파도 멀미는 안해서 좋았다.
중학교 때는 버스를 타고 아주 먼 데로 소풍을 갔다.
장위동 종점에서 161번 버스를 타고 홍제동 유진상가까지 가서 서오릉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삼십분도 안되어 멀미가 심해서 도심 한복판에 내려 토하고 한참을 쉬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갔다.
서오릉에서 김밥을 반만 먹은 건 돌아갈 때 또 멀미를 할까 싶어서였다.
꾀를 내어 친한 친구와 서오릉에서 유진상가까지 걸어서 돌아오기로 했다.
길을 물어 물어 천천히 걸어서 두시간만에 버스 종점인 유진상가에 도착할 때는 어둑어둑한 때였다.
걸어오는 동안 배가 고파 남겼던 김밥을 친구와 벤치에 앉아 먹었는데 기가 막히게 꿀맛이었다.
다행히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두시간의 산책에 힘이 들어서 멀미를 잊은 것 같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석관동에서 37번 버스를 타고 거의 종점인 대방동에서 내렸지만 멀미를 하지 않았다.
3년을 하루 세시간씩 타고 다녀도 멀미를 하지 않은 건 신기한 일이었다.
독서를 많이 한 편이어서 눈도 많이 나빠졌는데 멀미는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서울에 가서 한시간 이상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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