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276 작은, 것들 [김안녕] 작은, 것들 [김안녕] 정작 날 울린 이는 손수건 한 장 내민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 혜화역 술자리에서 언니 언니 하다 택시 같이 탄 그이가 손에 쥐여 주고 간 파란색 손수건이 십 년째 땀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니 먼지처럼 작은 것이 솜털처럼 가벼운 것이 참 이상하지 그 천쪼가리 하나가 뭐라고, 손수건을 받으면 참았던 토사물 눈물 다 터져 나오고 서러움 분한 마음 봇물처럼 나오고 가방 속에 든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그 쪼가리 하나가 대체 뭐라서 - 사랑의 근력, 걷는사람, 2021 *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크낙한 사랑을 주고 받은 사이도 아닌데 어떤 순간 작은 사랑을 베풀어주고 간 그 사람이 소중하다거나 큰 사랑을 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손수건 따위를 건네주는 그 마음이 헤아려지고 배려했던 그.. 2022. 4. 10.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사이는 감정이 살고 있는 집 정말 예민해 입술에 검지를 대고 발꿈치를 들고 걸어야 해 와장창 소리가 들린다면 이미 틀어졌거나 틀어지기 쉬운 사이 꽃과 꽃 사이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듯 기분 좋은 사이가 되려면 꽃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바람의 결을 읽듯 꽃의 마음을 잘 읽어야겠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냉정한 사람이 살고 있어 결과를 평가할 때 사이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을 끼워놓고 힘들었던 경우도 있어 그럴 땐 펼쳐놓은 일들을 혹은 사람들을 얼른 거둬들이거나 다음 장으로 넘겨주기도 해야 해 그래야 사이도 숨을 쉴 수가 있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질투심 많은 사람도 살고 있어 꽃처럼 좋은 사람과 있을 때 봄처럼 신나는 일을 할 때는 사이를 확 좁혀버려.. 2022. 4. 6. 묵시록 [신미균] 묵시록 [신미균] 꽃병 끝에 앉아 있는 파리와 그 파리를 내리치려고 공책을 들고 있는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날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리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의 속을 알 수 없는 살벌한 한낮 -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파란, 2020 ** Moment Of Truth! 투우사가 황소와 이리저리 힘을 뺀 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칼로 정수리를 찌르는 찰라가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 싸움에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사랑에 성공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돈을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 시험에 합격할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 살면서 대면하는 이 진실의 순간을 마주칠 때 긴장감은 최고조가 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과는 둘 중 하나라는 것. 희열이냐 절망이냐 둘 중 하나라는 것. 코로나가 유행하는데 마스크를 쓸 것.. 2022. 4. 6. 업 [신미균] 업 [신미균] 바위가 쑥부쟁이 하나를 꽉, 물고 있다 물린 쑥부쟁이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구부정하다 바람이 애처로워 바위를 밀쳐 보지만 꿈쩍도 안 한다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쑥부쟁이는 그래도 고마워서 바람이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파란, 2020 * 바위는 자기 몸을 부수어 약간의 오목한 곳을 만들고 그곳에 먼지와 씨앗과 자신의 몸 일부를 두었다. 씨앗은 자라 바위의 일부와 먼지를 움켜쥐고 자신의 생을 산다. 지나가는 바람은 낭창낭창한 쑥부쟁이가 불쌍하여 바위를 밀어보려 하지만 자연은 늘 힘센 놈이 왕이다. 바람은 머쓱해서 지나가지만 쑥부쟁이는 그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바위가 베풀어준 은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 2022. 4. 6.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