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드 1 [신미균]
외딴 풀밭 위에
나무 빨래판 하나
누워있습니다
우툴두툴한 돌기가
다 사라져 밋밋합니다
귀퉁이도 많이 닳아
군데군데 떨어져나갔습니다
더 이상 물속에서 퉁퉁 붇거나
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일은 없습니다
폭신폭신한 풀이
편안하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나비 한 마리
빨래판 끝에 앉아
살살 춤을 춥니다
햇볕은 따뜻하고
하늘은 푸릅니다
- 문학청춘 21년 겨울호/ 시인시대 2022년 봄호
* 시골에 가면 아직도 나무 빨래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도시에서는 쓸 일이 없는 나무 빨래판.
본업은 세탁을 위해 비누가 묻혀진 옷에 때를 빼라고 돌기도 주어 박빡 문때게 하였지만
부업으로는 방망이질을 당해 주는 거였는데 사실은 그게 본업에 더 맞을지도 모른다.
빨래하는 아낙은 시어머니 잔소리가 싫어서 멀리 떨어진 냇가에서 허벌나게 방망이질을 해댔다.
빨래보다 빨래하는 아낙의 속이 더 시원했을 터.
도시여자는 시부모를 모시지 않기에 속상할 일은 없을 게다.
그렇게 빨래판은 오은영선생님이 되어 심리상담을 해주더니 어느덧 풀밭에 버려져 해피엔딩을 맞았네.
우리네 인생도 저 빨래판을 참 많이 닮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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