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업 [신미균]

by joofe 2022. 4. 6.

 

 

 

 

 

업 [신미균]

 

 

 


 

 

바위가 쑥부쟁이 하나를

꽉, 물고 있다

 

물린 쑥부쟁이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구부정하다

 

바람이 애처로워

바위를 밀쳐 보지만

꿈쩍도 안 한다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쑥부쟁이는 그래도

고마워서

바람이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파란, 2020

 

 

 

 

 

* 바위는 자기 몸을 부수어 약간의 오목한 곳을 만들고

그곳에 먼지와 씨앗과 자신의 몸 일부를 두었다.

씨앗은 자라 바위의 일부와 먼지를 움켜쥐고 자신의 생을 산다.

지나가는 바람은 낭창낭창한 쑥부쟁이가 불쌍하여

바위를 밀어보려 하지만 자연은 늘 힘센 놈이 왕이다.

바람은 머쓱해서 지나가지만 쑥부쟁이는 그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바위가 베풀어준 은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 생을 지나간다.

자연이 주는 은혜를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며 산다.

그게 생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0) 2022.04.06
묵시록 [신미균]  (0) 2022.04.06
물이 빠지면서 [박상천]  (0) 2022.04.02
최후의 만찬 [정한용]  (0) 2022.03.30
꽃은 혼자서 피고 진다 [김동호]  (0) 202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