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신미균]
바위가 쑥부쟁이 하나를
꽉, 물고 있다
물린 쑥부쟁이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구부정하다
바람이 애처로워
바위를 밀쳐 보지만
꿈쩍도 안 한다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쑥부쟁이는 그래도
고마워서
바람이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파란, 2020
* 바위는 자기 몸을 부수어 약간의 오목한 곳을 만들고
그곳에 먼지와 씨앗과 자신의 몸 일부를 두었다.
씨앗은 자라 바위의 일부와 먼지를 움켜쥐고 자신의 생을 산다.
지나가는 바람은 낭창낭창한 쑥부쟁이가 불쌍하여
바위를 밀어보려 하지만 자연은 늘 힘센 놈이 왕이다.
바람은 머쓱해서 지나가지만 쑥부쟁이는 그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바위가 베풀어준 은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 생을 지나간다.
자연이 주는 은혜를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며 산다.
그게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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