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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낮달 [이미산]

by joofe 2022. 3. 17.

낮달, 노명희 화가 그림

 

 

 

 

 

낮달 [이미산]

 

 

 

 

흉터는 머무는 바람입니다

사라진 꽃들의 무덤입니다

내 몸에 남아있는 당신입니다

 

작은 입구 작은 내면 작은 고요

모든 작은 것들의 뿌리입니다

인기척에 마음 한 귀퉁이 흔들려

마주 보는 지점입니다

 

한낮의 적요로 번지다

감기지 않는 눈동자로 떠돌다

어느 정수리에 내려앉아 분명해집니다

골똘해지는 생각의 한켠에서

잠시 뒹굴다 홀연히 사라지는

그래서 조금 미안하고 조금씩 그리워하는

마당을 쓸고 마루를 닦고 허공의 한 지점을 가늠해보는

오래 아껴둔 흔적입니다

 

몽당빗자루처럼 앉아 졸고 있는 노파의

몸속을 통과하는 저 외롭고 고단한 길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폐업의 자세로 남겨진다 해도

출처의 흔적들 훨훨 날아

너무 야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승을 당겨오는 검지가 구부러졌다 펴지는 사이

어느 조팝나무에서 활짝 핀 눈알들 쏟아지겠죠

나를 기다리며 봄날이 오래 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 저기, 분홍, 현대시학, 2015

 

 

 

 

 

* 지금 이 순간 낮달이 떴다면 과연 몇명이나 낮달을 쳐다볼 수 있을까.

아마 별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을 거다.

그럼 밤에 뜨는 달은?

태양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니 눈에 잘 들기도 하려니와

손톱모양달, 반달, 보름달이 그때 그때 의기양양해서 떠 있다.

밤에 뜨는 달과는 달리 소심하게 떠 있는 낮달이어도 낮달은 자기의 모습으로 할일을 다 한다.

미소짓고 수줍게 떠 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칠 때는 내 입모양을 작고 동그랗게 만든다.

수고하는데 격려도 못해주고,  알아주지도 못해서 미안하고, 아껴주지도 못했네.

가끔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친구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낮달.

나직한 목소리로 친구야, 반갑다!를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