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유령들 [조온윤]
알고 있나요? 이 도시의 밤거리에는
아직도 성냥을 파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제값보다 몇 배는 더 비싸게요
손댈 수 없는 추위 속을 핼로윈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손바구니에 초콜릿 맛 동전을 가득 넣어줄 어른들의
등허리를 두드리고 있어요
무언갈 태워 담뱃불을 붙이던 시대는 지나갔나요?
그래요, 이제는 그들의 방문이 언짢은가요?
그래요, 간단해요, 고개를 조금만 움직이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안 보이는 반대쪽으로
그들이 안 보이는 높다란 키로 겅중겅중
시력 속에서 흩어져버리면 간단합니다
핼로윈에 사탕을 못 받은 유령들은 사라지고 말 테죠
안녕, 또 올게, 열리지 않는 문짝 위에 섬뜩한 낙서를 하고
언젠가는
똑같이 열리지 않는 침묵이 되어 이 거리에 돌아오겠죠
알아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당신 삶의 피곤한 주인입니다
셔터를 내리듯이 이 눈꺼풀을 닫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요, 그렇겠죠, 시월의 유령들은 돌아오겠죠
이 거리 어딘가에
출발하는 버스 창밖에 어두운 우체통처럼 서 있는
또 다른 아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테죠
두 눈을 닫아도 닫은 두 눈 위로 자꾸만
가로등 불빛이 지나갈 테죠
조그만 불씨 속에서 환시를 보려는 성냥팔이 아이가
애타게 성냥을 긋듯이
께름칙한 이 삶을 바로 보는 당신의 시력이 다시 점등될 때까지
- 웹진 시인광장, 2020년 12월호
* 이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워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네명이 모여야 성냥 한개비를 그을 수 있었단다.
우리나라는 팔십년대까지 다방에 가면 성냥갑을 서비스로 주던 시대가 있었지만
라이터의 편리함에 지금은 성냥을 팔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
성냥은 요즘 파바에서 생일케이크를 사면 기다란 성냥을 두어개 넣어준다.
자그마한 축하초에 불을 붙이려함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이 세상에 다시 온다해도 팔리지 않아서
추위를 피하려고 성냥을 계속 그어댈지도 모른다.
어린 소년소녀가 무언가를 팔아야하는 시대는 아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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