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내뿜는 아버지 [이승하]
일회용 아닌 생이 어디 있으랴
인간은 한 생에 몇 개의 종이컵을 버릴까
칫솔 하나를 사 써도 포장은 쓰레기
칫솔도 몇 달 안으로 쓰레기가 된다
식물이 애써 만든 산소를
동물인 나 이산화탄소로 내뿜었지
원유를 정제하여 만든 휘발유를
인간인 나 운전하면서 배기가스로 내뿜었지
허공으로 사라져도 대기권 안쪽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아버지
저승에서 이승으로 방을 옮긴 아버지
- 승하야, 살짝 나가서 담배 좀 사 오너라
- 아버지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하잖아요
- 마지막으로 한 대만 피우자
- 안 돼요, 그럼 또 중환자실로 옮겨야 돼요
- 딱 한대만 피우자
시원하게, 한 번은 내뿜고 싶어서일까
이라크에서 담배 물고 죽어간 부상병의 동영상
병원 침대에서 폐 앓으며 죽어가는 아버지
죽기 전에 들이마신 한 모금의 담배
그 담배가 주는 연기 같은 생애
허공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지라도
환하게, 한 번은 꽃피우고 싶어서일까
연기 내뿜는 아버지 얼굴, 만개한 목련이 된다
화장장 굴뚝이 아버지를 내뿜는다
-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나무옆 의자, 2016
* 나의 아버지도 마지막 담배 한 대 빨고 연기가 되셨다.
오십대 초반인데 워낙 술과 담배를 즐겨서 폐와 간이 망가졌다.
쓰러져 누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담배 한갑 사오라 하셔서
그 당시 여성들이 피우는 초록색 담배가 있어 제일 독하지 않은 담배를 골라 사다 드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가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드리니 두어 모금 빨고는
편안히 잠이 드셨다.
그리고 두시간 뒤에 잠든 채 하늘나라를 가셨다.
아버지가 워낙 많이 술과 담배를 소비하고 돌아가셔서
우리집 형제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주 가끔 사회적 활동을 위해 두잔 정도는 마시긴 한다. 그게 치사량쯤 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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