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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미지의 꽃 [김왕노]

by joofe 2021. 11. 9.

 

 

미지의 꽃 [김왕노]

 

 

 

 

 

 

  아직도 이름을 얻지 못한 꽃은 어디 있느냐. 너를 찾아 숲과 숲

언덕과 언덕을 넘어 찾아나서는 것이다. 엄청난 꽃말이 아니라 수수

한 꽃말을 지어주더라도 너는 태양보다 뭍별보다 더 빛날 것이다.

나도 이름을 얻지 못한 시절에 억겁을 떠도는 노숙자, 행려병자, 

주의 쓰레기 같았다. 이름을 얻으니 이름은 가릉빙가의 날개 같아

마음껏 휘저으며 때로는 불사조처럼 불의 날개를 활활 휘저었다. 

한 번 길 잘못 들므로 영영 너를 놓쳐버리므로 너는 영원히 이름 얻

지 못해 미지의 꽃으로 남는 것이 도리어 이름이란 족쇄가 없는 자

유라, 너는 우주로 끝없이 피어나는 우주의 꽃이 될 수도 있을 터,

내가 너를 만나 너의 이름을 짓고 꽃말을 준다는 것은 너의 우주를

고이 접고, 나에게 미지의 꽃에서 나의 꽃으로 오라는 간곡함이므

, 여의치 않으면 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난 돌아 가겠. 내가

네게, 네게 내가 없다는 것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므

로 하나 사랑인데 미지의 꽃이여, 어디서 어둠을 헤치고 피어나 있

느냐. 기어코 너를 향해 내 뼈 마디마디가 휘어져 간다.

 

           - 계간 『아라문학』 2020년 여름호 

 

 

 

 

* 꽃은 어려운 학명으로도 이름을 가지고 있고 흔히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꽃말도 가지고 있다. 알면 보이지만 알지 못하면 미지의 꽃일 수 있다.

아, 저건 너무 예뻐! 탄성을 질러도 식물도감에도 없는 꽃들이 많아

모두가 미지의 꽃이다. 스치듯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계가 돌다보면

모습도 탄성도 잊혀진다.

지금껏 내가 알았던 꽃들과 알고 지낸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비록 만나지는

못했어도 같은 시간 속에 지구의 어딘가에서 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별모양의 꽃을 보면 어, 너는 그냥 별꽃.

분홍꽃을 보면 너무 분한게 많구나, 분홍꽃

너는 깨끗하고 결백하구나, 하얀꽃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벌들을 제일 먼저 불러내는 회양목꽃, 너는 벌꽃

(회양목은 이름이 입에서 뱅뱅 돌 때가 많다. 망각의 강물을 마셨나...)

줄기가 가냘프고 낭창낭창하구나, 낭창꽃

이름을 몰라도 내 마음속엔 늬들의 이름이 있단다.

서운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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