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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간판은 없다 문 앞에 놓은 이 빠진 국수 사발에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밥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 비법의 육수도 없다 날시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하겠다 그날 판 첫 국수는 죄 없이 배고픈 이들의 몫으로 달항아리에 뗀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서지는 날은 써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 허기보다 사람 고파 드는 손님 묻자 않아도 긴 안부 뽑아내면 경사慶事에도 조사弔詞에도 다 배불리 먹으라 국수사리 수북이 부조하는 주인 국숫물 다스리듯 마음 재우고 면이 익어가듯 늙어가면 되겠다 - 그 여자네 국숫집, 북인, 2019 * 국수, 칼국수, 수제비. 어릴 땐 참 많이도 먹었던 것들이다. 지금이야 워낙 먹거리가 많아서 아주 가끔 별식으로 먹는 것이지.. 2021. 10. 1.
혼자 울 수 있도록 - 오래된 기도3 [이문재] 혼자 울 수 있도록 - 오래된 기도 3 [이문재] 혼자 울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기로 한다 모른 척 다른 데 바라보기로 한다 혼자 울다 그칠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다 웃을 수도 있도록 나는 여기서 무심한 척 먼 하늘 올려다 보기로 한다 혼자 울 때 억울하거나 초라해지지 않도록 때로 혼자 웃으며 교만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도록 저마다 혼자 울어도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누군가 어디선가 지금 울음을 그쳤을 누군가 어디에선가 이쪽 하늘을 향해 홀로 서 있을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혼자 있음이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짐짓 모른 척하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들 멀리서 보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서로서로 맑고 향기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 혼자의 넓이, 창비, 2021 .. 2021.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