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울 수 있도록 - 오래된 기도 3 [이문재]
혼자 울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기로 한다
모른 척 다른 데 바라보기로 한다
혼자 울다 그칠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다 웃을 수도 있도록
나는 여기서 무심한 척
먼 하늘 올려다 보기로 한다
혼자 울 때
억울하거나 초라해지지 않도록
때로 혼자 웃으며
교만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도록
저마다 혼자 울어도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누군가
어디선가 지금 울음을 그쳤을 누군가
어디에선가 이쪽 하늘을 향해 홀로 서 있을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혼자 있음이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짐짓 모른 척하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들
멀리서 보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서로서로 맑고 향기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 혼자의 넓이, 창비, 2021
* 로빈슨 크루소가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정착하여 28년을 혼자가 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소설이다.
28년 동안 혼자였지만 누군가 로빈슨 크루소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형제가, 친구가......
누군가 나를 기도하고 있을 거란 믿음이 그를 살게 했을 것이다.
곁에 없더라도 멀리서 기도해주고
혹은 곁에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지만 기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게 인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긴 했듯이
누군가와는 관계하며 혼자가 아니게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지독하게 혼자이긴 하다.
그 넓이를 굳이 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혼자이고 외롭고 지독하게 외로워서
어디선가 혼자 울고 몸부림치지만
다행히, 정말 다행히 누군가는 날 위해 기도하고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게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혼자이지만 나도 널 위해 기도하고 있어.
혼자이지만 너도 날 위해 기도하고 있겠지.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게 기도의 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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