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서효인]
처음 가본 도시에서는 두리번거리게 된다. 높게
쌓아 올린 어떤 냄새가 정수리를 잡아당긴다. 그곳
은 버스의 도시였다. 다친 무릎에 빨간약을 바르듯
버스는 도로를 물들였다. 해가 강을 넘어 바다에 닿
을 때 사람들은 투명한 무릎을 벤 채 눈을 감았고
곧 떠야 했다. 부평이었다. 고개를 들면 점점 커지
는 욕망들이 걷잡을 수 없는 몸짓을 하고 정수리에
침을 뱉었다. 서쪽으로 아니 동쪽으로 그 가운데에
서 우리는 빨갛게 물들어간다. 정수리가 사나운 시
절을 지나 빨간 속살을 드러낼 때까지 우리는 두리
번거린다. 모든 도시는 초행이다. 냄새가 난다. 넘
어지는 사람들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침을 삼킨다.
소독약이 도로를 빨갛게, 무릎 그리고 닫은 눈꺼풀
사이로.
- 여수, 문학과지성사, 2017.2.14
* 시 제목이 부평이라 생각나는 일이 있다.
십여년 전에 주페가 일년정도 카페지기를 한 적이 있다.
다사랑 삼층에서 스물세명의 회원이 모여 시낭송도 하고
카페 생일케익도 자르고 이런저런 선물도 주고받았댔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주페는 영등포역으로 가서 천안행 기차를 타야했고
부평식구가 제법 많아서 부평으로 가는 회원들과 함께 전철을 타게 되었다.
용산역에서 누군가 급한 목소리로 여기서 내려 버스를 타고갑시다, 외치자
부평식구들은 우르르 내렸다.
안녕히 가세요도 없었고 수고하셨어요도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갑자기 눈에서 사라졌던 그때.
그때가 생각난다.
다행히 그날 앞치마를 손수 만들어왔던 한 회원이 전화를 주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니 피로가 확 풀리긴 했다.
부평식구들 찔리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냥 서효인의 부평을 읽다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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