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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바람이 불면 승부역*으로 간다 [송문희]

by joofe 2022. 1. 2.

 

 

바람이 불면 승부역*으로 간다 [송문희]

 

 

 

 

아무것도 없어도

어쩌다 찾아가도 그대로였으면

세상은 너무 변하고

우리들에겐 변하지 않는 무엇이 필요해

그게 너였으면

 

홀로 휑한 바람을 만나고 싶어

무작정 차표를 끊는 그 순간

마음은 벌써 이곳에 닿아 있지

 

작은 대합실 작은 꽃밭

소실점을 향하여 뻗어가는 선로

보면 볼수록 청아한 풍경들

어서와 앉았다 가라 손짓하는 작은 다리

먼 데 집들도 고요를 품고 있네

 

소소소 마음을 울리는 바람의 잔물결

그대 품처럼 떨리는 하루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평이나”

 

세 평을 노래한 옛 시인의 시비

절경은 이걸로 충분해

 

 

* 승부역(承富驛) :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영동선 열차역

 

           - 고흐의 마을, 달아실, 2020

 

 

 

 

* 富를 잇는 역이니 왠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대개 조그만 역들은 마을도 조그마해서 아기자기한 맛조차 없고

그야말로 소박, 그 자체인 마을이기 십상이다.

승부역은 대를 이어 부를 물려받았으니 승부역 앞에는 버거킹 가게도 있을 것 같고

스타벅스 다방도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꼭 버거킹이 아니어도 세 평 가게에서 맛있는 빵이나 커피를 팔아만 준다면

그보다 큰 행운은 없을 게다.

눈에 떠오르는 풍경은 역앞에 할머니들이 보따리 풀어놓고 애호박이나 팔고 있을 것 같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에 말은 밥을 숟가락으로 풍풍 떠먹으며 고추나 아작아작 씹어드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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