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승부역*으로 간다 [송문희]
아무것도 없어도
어쩌다 찾아가도 그대로였으면
세상은 너무 변하고
우리들에겐 변하지 않는 무엇이 필요해
그게 너였으면
홀로 휑한 바람을 만나고 싶어
무작정 차표를 끊는 그 순간
마음은 벌써 이곳에 닿아 있지
작은 대합실 작은 꽃밭
소실점을 향하여 뻗어가는 선로
보면 볼수록 청아한 풍경들
어서와 앉았다 가라 손짓하는 작은 다리
먼 데 집들도 고요를 품고 있네
소소소 마음을 울리는 바람의 잔물결
그대 품처럼 떨리는 하루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평이나”
세 평을 노래한 옛 시인의 시비
절경은 이걸로 충분해
* 승부역(承富驛) :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영동선 열차역
- 고흐의 마을, 달아실, 2020
* 富를 잇는 역이니 왠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대개 조그만 역들은 마을도 조그마해서 아기자기한 맛조차 없고
그야말로 소박, 그 자체인 마을이기 십상이다.
승부역은 대를 이어 부를 물려받았으니 승부역 앞에는 버거킹 가게도 있을 것 같고
스타벅스 다방도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꼭 버거킹이 아니어도 세 평 가게에서 맛있는 빵이나 커피를 팔아만 준다면
그보다 큰 행운은 없을 게다.
눈에 떠오르는 풍경은 역앞에 할머니들이 보따리 풀어놓고 애호박이나 팔고 있을 것 같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에 말은 밥을 숟가락으로 풍풍 떠먹으며 고추나 아작아작 씹어드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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