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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럭키슈퍼 [고선경]

by joofe 2022. 1. 2.

이미경 작가 그림

 

럭키슈퍼 [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 조선일보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

 

 

 

 

 

* MZ세대가 쓴 신춘문예시다.

시를 배우고 가르치는 시인들은 해석이 금방 되겠지만 

당췌 두세번을 읽어도 금방 다가오지 않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세대는 늘 변화하고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다.

럭키슈퍼는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장터와 같지만

가끔 신상을 팔기도 한다.

새로 나온 과자라든지 복고풍의 리뉴얼 상품이라든지 새로운 세대가 열광하는 것들이 있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친 구시대의 시인의 말처럼 

버려진 홍시 내지는 낙과 신세가 되어 단물이 빠진, 씹던 껌이 되어버린 밀려난 세대는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껍데기가 되어 구석탱이로 밀려나야 한다.

그게 실은 구석탱이로 밀려난 우리들의 잘못임을 잘 안다.

다만 가난했던 나라를 부자가 되게 하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후회는 없다.

우리도 우리의 앞세대를 밀어냈듯이 늬들도 우리를 밀어내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눈 치켜뜨고 밀려난 세대를 바라보지 말고 서로 공존공생했으면 좋겠다.

늬들이 새로운 씨앗이고 미래이고 이, 행운을 가져다 주는 럭키슈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다 같이 껍질째 먹는 행운을 가져다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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