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 [이혜미]
다정에도 핏빛이 어리던 봄꿈이었을까
몸이 있던 봄을 기억하는 방식이었어 피가 너무 달아 어지럼증을 앓던 아
침, 주머니에 어린 새를 감춰두고 입을 다물면 끈적해진 숨이 붉게 물든 잇
몸을 타고 고여들었다
양말을 찾아 신고 뒤돌아서 기다렸지 투명한 무리들이 찾아와 국을 뜨고
과육을 베어 무는 소리를 개가 짖기 시작하면 일제히 시계를 바라보며 오래
된 약속에 대해 생각했다 홑이불을 덮고 자다 죽었다는 어린 조상을
우리는 사라진 것들만을 두려움 없이 사랑했으니까
퍼져나가는 단것의 무늬로 길흉을 점치며
예쁜 입술을 가지면 좋은 나라에 입장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 아무리 베어
물어도 사라지지 않는 죽음을 핥으며 마음껏 달아지고 싶어서, 달라지고 싶
어서
몸을 벗을 수 있을까 색색으로 물든 이 작은 껍질을 털고
그만둘 수 있을까
피라는 직업을
웅크린 새를 달래어 꺼내놓으면 입에 단내가 돌고, 알 속에서 조금씩 펼쳐
지는 날개를 생각해 흩어진 육체에게도 선연한 색들이 필요했다고
옥춘, 다녀간 혼이 흘려둔 흰빛처럼
피와 숨이 겹치는 상서로운 병이어서
- 월간 현대문학, 2021년 4월호
* 옥춘이 옥춘사탕을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무슨 회갑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 상위에 탑처럼 쌓아올린 희끗불긋한 사탕인 것도 같다.
핏빛, 너무 달고 끈적하고 다녀간 혼이라는 게 어린 조상의 사연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름이 옥춘인지 사탕이름이 옥춘인지도 잘 모르겠다.
대학 이학년 때 나는 써클 총무를 맡았다.
옥이라는 일년 후배가 있었다.
써클실에서 대개 일학년들은 조잘거리고 하하호호하며 즐거워했다.
옥이는 자그마한 체구에 늘 말수도 적고 낯설어하곤 했다.
이학년들은 농활준비와 야학운영등으로 늘 바빴기 때문에 술 마실 때 빼놓곤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가을학기중에 옥이가 세상을 달리했다.
왜 그랬는지는 일년 후배들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그저 말 못할 사연이 있어서 어린 조상처럼 그랬을까 싶었다.
일학년들은 동기라서 벽제로 우르르 몰려갔고
나도 총무라 함께 따라갔었다.
옥춘사탕이라도 물고 좋은 나라에 갔을거라 믿는다. 벌써 그게 사십여년 전 일이다.
옥춘사탕이 지금도 팔리고 있을까.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태 [문성해] (0) | 2022.01.13 |
---|---|
갈급에게 [이병률] (1) | 2022.01.13 |
紫月島 [박수현] (0) | 2022.01.07 |
너도바람꽃 [정진혁] (0) | 2022.01.07 |
열과(裂果) [안희연] (0) | 2022.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