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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뒤태 [문성해]

by joofe 2022. 1. 13.

 

뒤태 [문성해]

 

 

 

 

돗자리 파는 노점 영감님 뒤태가 꼭 김춘수 선생 같다

목이 기룸하고 어깨는 조붓하고 키는 중키인

뒤태에 예전에 돌아가신 선생 뒤태가 붙어 계신다

 

전봇대에 뭔가를 붙이는 사람 뒤에 돌아가신 삼촌이 있고

저수지에 앉아 있는 낚시꾼 뒤엔 큰아버지가 있다

마을 어귀 바위 위에도 어릴 때 잃어버린 백구의 등이 얹혀 있다

이들은 다 한통속으로 앞을 보여주지 않는다

 

봄날 오후의 언덕과

축사로 들어서는 염소들 등에도 얹혀 있는 것들

 

내 뒤에도 누가 붙어사는지

가다가 한참을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나의 뒤에 내가 모르는 한 사람이 붙어사는 일

나는 그를 위해 밥을 주고 잠을 주고 노래를 준다

 

이다음 나는 풀잎의 뒤태로 살 것이다

돌아나가는 저녁연기와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가물치 등도 좋을 것이다

 

                    -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문학수첩, 2020

 

 

 

 

 

 

 

 

* 뒤가 든든한 사람은 믿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다.

꼭 믿음은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가령 학교 선생님의 좋은 모습이 내 등 뒤에서 자신감을 줄 수도 있고

직장상사의 말투가 은근히 착 달라붙어 어느새 그런 말투를 쓸 때가 있다.

혹은 친구의 다정함이 등을 따뜻하게 해서 저 친구는 늘 변하지 않을거야!

막연한 우정으로 내 뒤태에 장착하게 된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

주고 받은 게 쌓이면 그게 내 삶의 밑천이 된다.

영향을 주고 받은 게 나의 뒤태가 되어 타인들은 뒤태를 준거해서 나를 아는 척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뒤태를 어, 선생님 같아.

어, 큰아버지 같아.

어, 내 뒤에 붙어사는 사람 같아.

 

누군가의 뒤태에 붙어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가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해도 그게 신이 나에게 준 소명인지도 모른다.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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