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급에게 [이병률]
그 산에는 절벽이 있다
그 절벽 끝에 사원이 있다
사원 안에는 기도실이 하나
그 안에서는 절대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는 절대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갈구해서도 안 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제외한 기도만을 허락한다고 어둠이 안내한다
그것이 막막하여
숨을 쉬는 것조차
당신을 떠올리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해주는 절벽 끝 방에서
촛불을 켰다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 세상에서 가장 갈급한 갈급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픈 자식을 두고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어머니일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다.
내몸이 망가지고 부서진다 해도 자식만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오직 기도에 매달리는 어머니의 갈급보다 더한 갈급이 있을까.
차범근감독이 이영무감독 팀과 승부를 벌이며
제발 내팀이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진 않는다.
누가 이기든 정정당당하게 경기하고 다치는 선수들이 없게 해달라고
아버지 같이 기도할 것이다.
사실 나를 제외한 기도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누구나 마음 속에 사원 하나 가지고
나를 제외한 기도를 위해 촛불 하나 켜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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