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제라늄 [이규리]

by joofe 2022. 1. 22.

 

 

 

제라늄 [이규리]

 

 

 

 

 

안에서는 밖을 생각하고 밖에서는 먼 곳을 더듬고 있으니

나는 당신을 모르는 게 맞습니다

 

비 맞으면서 아이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약속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물은 비를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런 은유라면

나는 당신을 몰랐다는 게 맞습니다

 

모르는 쪽으로 맘껏 가던 것들

밖이라는 원망

밖이라는 새소리

밖이라는 아집

밖이라는 강물

 

조금 먼저 당신을 놓아주었다면 덜 창피했을까요

 

비참의 자리에 대신 꽃을 둡니다

 

제라늄이 창가를 만들었다는 거

창가는 이유가 놓이는 곳이라는 거

 

말 안 해도 지키는 걸 약속이라 하지요

 

늦었지만 저녁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저녁에게 이르도록 하겠어요

 

여름, , 안개, 살 냄새

 

화분을 들이며 덧문을 닫는 시간에 잠시 당신을 생각합니다

흔들림도 이젠 꿈인데

 

닫아두어도 남는 마음이란 게 뭐라고

 

꽃은 붉고

 

비 맞는 화분에 물도 주면서 말입니다

 

           - 계간 창작과 비평,2021 가을호 

 

 

 

 

 

  

* 유럽을 다녀보니 키작은 집들마다 창밖으로 화분을 내어놓았다.

집주인이 즐거운 게 아니라 지나는 행인들이 즐거웠다.

오, 상당히 이타적인 사람들이네,라고 생각했다.  

비가 와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을 것 같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주었을 것이다.

화분들이 창가를 만들고 창가는 이유를 만들었다지만 이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를 놓은 것이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니 화분에 물을 주면 화분은 마음의 여유를 준다.

꽃이 피면 좋고, 나지 않더라도 잎들이 자꾸자꾸 자라면 마음은 언제나 흐뭇하다.

물 주는 마음이 사랑인 것을.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안희연]  (0) 2022.01.24
이삭 줍는 사람 [성선경]  (0) 2022.01.24
맹꽁이 [신미균]  (0) 2022.01.22
도토리 [허림]  (0) 2022.01.22
저녁이 와서 당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권현형]  (0) 2022.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