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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시인의 애인 [김중일]

by joofe 2022. 2. 12.

윤동주 시인은 애인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시인의 애인 [김중일]

   ​

   아주 오래전에 고드름처럼 자라는 열매가 있었다, 그건 잠든 시인을 안고

있는 애인의 눈꺼풀에 매달린 눈물, 불현듯 시인의 정수리로 뚝뚝 떨어질 뾰

족한 운석, 시인이 한숨 많은 애인을 끌어안자 가슴 가득, 울음 참는 들숨처

럼 스며드는 한숨의 애인, 오늘도 시인은 애인에게 보여줄 시를 썼다, 시를

받아든 시인의 애인은 한숨을 폭 쉰다, 이 시는 당장 읽지 않으면 금세 녹아

서 사라져버리겠지, 두 손이 부재의 기억으로 끈적이고, 기도를 멈출 수 없

게 완전히 달라붙어버리겠지, 시인의 애인은 시인을 먼저 살다 간 사람, 

인이 이제 살다 갈 사람, 한달 전에도 백년 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

은 여기 있다, 오늘도 시인의 애인은 시인의 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밖에는 막대사탕같이 꽂힌 세상 모든 꽃송이를 초여름의 태양이 혼자 다 녹

여 먹으며, 한자 한자 시를 읽고 또 고심하는 시인의 애인을 본다, 있잖아 내

내 묻고 싶었는데, 시는 왜 쓰지, 시인이 말한다, 나도 그런 시, 네게 무작정

읽히는 시, 불가피한 시가 되고 싶다고, 시인의 애인은 잠든 시인의 그림자

로 매일 밤 드나든다, 시인의 꿈속, 구석구석 애인의 체온이, 어디를 가든 시

인보다 먼저 시를 찾아 헤맸던 애인의 메모가 적혀 있다, 시인이 가진 고독

의 주머니가 희생자의 주먹을 넣은 것처럼 불룩해졌으면 좋겠어, 코앞에 펼

쳐놓은 공기 위에 한자 한자 새겨져 불가피하게 읽히는, 이해할 필요 없는

시들이 세상을 무작정 가득 채웠으면, 

  ​좋겠어.

 

              - 월간 현대시, 2022년 1월호

 

 

 

 

 

* 시인의 애인은 시인의 시를 100퍼센트 이해할까.

이건 말야 이러구 저러구 해서 이렇게 쓴 시야, 라고 시평론하듯 설명하면 100퍼센트 이해할까.

시인도 써놓고 애인한테 설명하려면 온갖 철학서적을 섭렵하고 화법을 연구하고

별짓을 다 해야 할텐데

애인은 그저 한숨만 폭 쉰다니 시인도, 시인의 애인도 참 어렵게 살겠다.

걍 설명 안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눈빛으로 눈치 까고 

아, 시인이구나. 이 사람.

아, 시인의 애인이구나. 이 사람.

편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든 입술로 말하는 것은 시가 되고 살이 되고 

누구든 눈으로 드는 것을 받아들이면 철학이고 생활이고

마음이 정화되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게 곧 시이고 시인의 마음이고 시인의 애인의 마음일 게다.

 

오늘도 시 한 편 읽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