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감상

비눗방울 하우스 [심재휘]

by joofe 2022. 2. 15.

 

 

 

비눗방울 하우스 [심재휘]

 

 

 

 

광대분장을 한 사내가 박물관 앞 광장에서

두 팔을 휘저으니 큰 비눗방울이 생긴다

아이들은 제 키만한 방울 속으로 들어가려고

뛰어다닌다 물로 부푼 집을 만져보려다 이내

비눗물을 뒤집어써도 미끌거리며 깔깔거린다

 

나도 저런 얇다란 잠 속에 한 몸 들어가

꿈을 꾼 적이 있었던 것 같고

어룽거리는 바깥을 내다보며 웃다가 깨어

어둠 속에 오래 앉은 적도 있는 것 같다

 

박물관 문은 닫히고 그 사내가

바닥에 깔아놓은 비닐 장판을 걸레로 훔치면

아이들이 사라진 저녁이 온다

분장을 지운 사내는 가방을 든 하루를 메고

제가 만든 비눗방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유물이 되지 못한 그의 하루는 터져서

길바닥에 흥건해도 방울 속 뒷모습은 멀어지며

무지갯빛이다 그는 비눗방울 속에서 오늘도

터지지 않는 꿈을 꾸리라

제발 그러리라

 

        - 시작, 2019년 가을호

 

 

 

 

* 유럽의 도시는 어느 나라를 가나 광장을 중심으로 한다.

광장의 한쪽은 성당이 있고 또 한쪽은 관공서가 있고 또 한쪽은 상가가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주택들이 길 따라 줄서있다.

주황색지붕은 주택이고 드문드문 까만 지붕은 관공서다.

광장에는 대개 비눗방울을 예술처럼 불어주는 아저씨가 있다.

돈받고 하는 건지 취미로 하는 건진 몰라도 꼭 있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그 아저씨 주위에서 춤추듯, 꿈꾸듯 비눗방울을 쫓는다.

우리나라의 광장은 대개 황량해서 비눗방울 같은 낭만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아이여서 이 단순한 비눗방울에서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행복해한다.

 

비눗방울을 터뜨리고 따라다니고 커지는 만큼 눈동자도 커지는 이 행복을,

이 꿈을 주는 광장이 우리에게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모하는 광장이 아니라 꿈을 꾸는 그런, 광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