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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먼 곳이 있는 사람 [손택수]

by joofe 2022. 2. 15.

노명희 화가 그림, 낮달

 

먼 곳이 있는 사람 [손택수]

 

 

 

 

걷는 사람은 먼 곳이 있는 사람

잃어버린 먼 곳을 다시 찾아낸 사람

걷는 것도 끊는 거니까

차를 끊고 돈을 끊고

이런저런 습관을 끊어보는 거니까

묵언도 단식도 없이 마침내

수행에 드는 사람

걷는 사람은 그리하여 길을 묻던 기억을 회복하는 사람

길을 찾는 핑계로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

모처럼 큰맘 먹고 찾아가던 경포호가

언제든 갈 수 있는 집 근처

호수공원이 되어버렸을 때를 무던히

가슴 아파 하는 사람

올림픽 덕분에 케이티엑스 덕분에

더 멀어지고 만 동해를 그리워하는 사람

강릉에서 올라온 벗과 통음을 하며

밤을 새우던 일도 옛일이 돼버리고 말았으니

올라오면 내려가기 바쁜

자꾸만 연락 두절이 되어가는

영 너머 먼 데를 잃고 더 쓸쓸해져버린 사람

나는 가야겠네 걷는 사람으로

먼 곳을 먼 곳으로 있게 하는 사람에게로

먼 곳이 있어 아득해진 사람에게로

 

-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

 

 

 

 

 

 

* 해를 더할수록 먼 곳은 먼곳이 되어간다.

멀다는 것이 고착화된다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걸어서도 많이 다니고

버스를 타고서도 많이 다녔지만 점점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다행히 손전화가 있어 아주 빠르게 음성으로 만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먼곳에 있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그나마 케이티엑스와 에스알티가 생겨 먼곳이 아니지만

결국은 마음이 멀어졌다는 게다.

해를 더할수록 머언 곳은 먼 곳이 되고 먼곳이 되고 만다.

 

여전히! 가까운 사람이 되길 희망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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