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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히야신스 [송종규]

by joofe 2021. 10. 6.

히야신스 [송종규]

 

 

 

 

 

그러므로 모든 서사는 안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모든 부류의 사물은 결국 서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의 생애 역시 서사 아닌 것이 없다

그것은 실타래처럼 얽혀있거나 뜨거운 웅덩이처럼

함몰되어 있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히야신스나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기술하길 원한다면

꽃이나 사람의 생애는 곧,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진다

당신의 문장은 날렵하거나 기발하기도 하지만

당신이 만약 시인이라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하려하지 말 것,

그 남자의 구부정한 등이 한권의 서사인 것처럼

훌쩍거리며 국물 마시는 당신도 결국 한 권의 서사이다

젖은 길바닥에 버려진 우산이나 페트병도 알고 보면

글씨들 빼곡한 한 권의 책

 

히야신스는 눈물처럼 맑은 문장이다

구름이 느리게 한 생애의 머리 위로 지나간다

 

​            - 계간 애지, 2021년 봄호  ​

 

 

 

 

 

* 구부정한 등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묻지마라. 그 또한 하나의 서사이니까.

버려진 우산은 왜 버려졌을까? 묻지마라. 그 또한 하나의 서사이니까.

책으로 쓰면 저마다 구구절절이 사연이 가득할 거다.

페트병 하나를 만들기 위해 중동지방에서 뽑아올린 석유를 커다란 유조선에 싣고

몇날 며칠 바다를 가로지르고 또 바다를 가로지르고

항구에서 하역되어 정유공장으로 보내지고 이런 저런 공정을 거쳐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지고

그걸 또 금형에 집어넣어 하나의 페트병을 만든다.

누군가에게 1리터의 물을 마시게 하려고 몸 안에 물을 담고 있다가 쓸모없이 버려질 때

아이덴티티는 벗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페트병은 무명으로 분리수거함으로 보내진다.

글쎄, 다시 녹여서 김장 담그는 고무다라이로 환생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생애나 사물의 생애(?)나 모든 게 하나의 서사이다.

시인들도 이런 걸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문득 새끼손가락 마저도 굳은 살이 박힌 피아니스트의 손이 생각나고

울퉁불퉁 괴물같은 발로 춤을 추는 무용가의 발가락이 생각난다.

모든 게 아름다운 서사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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