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 [고영민]
어린 시절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너 여자지?
놀리던 할아버지 한분
목단 붉게 핀 마당 한켠을 빌려 서 있던
아니예요 저 남자예요, 대꾸를 하면
너 여자 맞아!
웃으시던
늘 조마조마하던
빨리 지나치려 뛰어가던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하던
그 집 앞
언제부턴가 마당은 텅 비어
목단만 혼자 붉던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아직도 들려오는
너 여자지?
너 여자지?
할아버지 목소리
- 봄의 정치, 창비, 2019
* 스무살쯤 차이나는 막내이모는 우리집에만 오면
너, 나 흉봤지?
- 아니예요.
흉 봤어, 그렇지?
어린 나는 늘 억울한 마음으로 막내이모를 미워했었다.
그랬던 막내이모는 내가 대학 다닐 때 이종사촌동생들을 가르치게 했다.
꽤 오랫동안 용돈을 받았다.
오,륙년 전에 하늘나라로 이사 가셨지만 나를 놀리던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
세월은 늘 먼저 태어난 세대를 밀어낸다.
목단의 꽃말이 부귀, 은혜, 존경이라니 나는 남아서 막내이모의 은혜를 생각해야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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