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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목단 [고영민]

by joofe 2022. 5. 20.

 

 

 

 

 

목단 [고영민]

 

 

 

 

어린 시절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너 여자지?

놀리던 할아버지 한분

목단 붉게 핀 마당 한켠을 빌려 서 있던

 

아니예요 저 남자예요, 대꾸를 하면

너 여자 맞아!

웃으시던

 

늘 조마조마하던

빨리 지나치려 뛰어가던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하던

그 집 앞

 

언제부턴가 마당은 텅 비어

목단만 혼자 붉던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아직도 들려오는

너 여자지?

너 여자지?

 

할아버지 목소리

 

                            - 봄의 정치, 창비, 2019

 

 

 

 

 

 

 

* 스무살쯤 차이나는 막내이모는 우리집에만 오면

너, 나 흉봤지?

- 아니예요.

흉 봤어, 그렇지?

어린 나는 늘 억울한 마음으로 막내이모를 미워했었다.

그랬던 막내이모는 내가 대학 다닐 때 이종사촌동생들을 가르치게 했다.

꽤 오랫동안 용돈을 받았다.

오,륙년 전에 하늘나라로 이사 가셨지만 나를 놀리던 막내이모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

 

세월은 늘 먼저 태어난 세대를 밀어낸다.

목단의 꽃말이 부귀, 은혜, 존경이라니 나는 남아서 막내이모의 은혜를 생각해야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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