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홀에서의 무반주 첼로 독주 [송찬호]
첼로 홀로 무대 한 가운데 앉아 있다
첼로 연주자와
첼로 악보는 술주정뱅이 음악과 함께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다
세계는 루머로 가득 차 있다
신흥 종교가 발생한 복음의 땅으로 황금 좌변기들이 떼지어 날아간다
양귀비들은 다시 국경을 넘었다 이제 그 붉은 난민들을 받아줄 곳은 지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
어느 도시에서는 독특한 시위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창밖 거리로, 일제히 냄비를 집어 던진다
아라비안나이트는 파탄이 났다 양탄자와 요술램프가 전격 이혼을 발표했다
세계는 곧 어두워졌다
객석에 검은 별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다
첼로는 여전히 무대에 고적하게 앉아 있다
연미복 첼로 연주자와
양피지 첼로 악보는
비틀거리는 음악을 부축하고
연주회장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
조명이 첼로를 한번 환하게 비췄다가 다시 흐려졌다
객석의 어둠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턱을 깎았다
개똥지빠귀는 핏빛 일몰의 유언장을 물고 날아왔다
의자에서 첼로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들이 오고 있다!
거대한 철탑의 송전선이 산 넘어 오고 있다
자외선이 쏟아지고 있다
오로라 살인자가 오고 있다
자작나무 흰 도끼가 도시를 벌목하러 오고 있다
연미복 첼로 연주자와
양피지 첼로 악보가
비틀거리는 음악을 부축하고
장작더미 위로 오르고 있다
활활활 연주가 불타고 있다
- 《발견》2017 겨울호
* 세상의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가고 무질서의 세계로 날아간다.
아니, 세상 자체가 무질서의 세계가 되어간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혹은 문학이든 무질서해진다.
학생때 작곡음악학과 학생과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음악은 너무 많이 작곡해서 더이상 작곡할 정형화된 음악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늘리고 비틀고 생략하고 무슨 풍, 무슨 풍으로 변형시켜 비정형화하여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무질서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 학생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음악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기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중이다.
첼로는 남저음 목청처럼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다.
바이올린처럼 가볍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앉아서 차분하게, 가슴을 먹먹하게 울려주며 비틀거리는 인생을 부축해 준다.
첼로는 가슴으로 안고 연주하기에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다.
밴드는 기타와 피아노와 드럼과 보컬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 '호피폴라'라는 밴드는 기타와 첼로와 보컬로만 연주가 가능하다.
물론 때로는 피아노와 기타가 추가 되기도 한다.
요란한 드럼보다 가슴을 울리는 첼로연주가 압권이다.
이쯤되면 무질서가 아닌 질서를 찾아가는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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