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신미균]
팽나무 속에는
귀가 있나봅니다
새터말 아주머니가
웃말 아저씨가
무속인 박씨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자질구레한 근심들을 털어놓으면
알았다는 듯
나뭇잎 몇 개를 떨어뜨려 줍니다
듣고도 못 들은 체
알고도 모르는 체
그렇게 몇 백 년
자기 얘기는 한번도 못하고
사람들의 근심에 귀기울이다보니
나뭇가지들이 많이도
구불구불해졌습니다
그 속내는
온몸이 쭈글쭈글해진
우리 증조 할머니가
아실 것 같습니다
- 맨홀과 토마토케첩, 천년의시작, 2003
* 물미해안의 도로를 드라이브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물건리에서 시작해서 미조항까지의 드라이브 코스는 가히 환상적이다.
물건리에는 방조 어부림이라는 곳이 있고 수백년 된 나무들이 아름답게 모여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팽나무이다.
산책 나온 모든이들의 사연을 수백년 듣고 살았지만 한마디도 옮기지 않는 기특한 나무이다.
팽나무 앞에서 여러분의 증조할머니가 손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