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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튤립 [김혜영]

by joofe 2022. 6. 11.

 

 

 

 

 

튤립 [김혜영]

 

 

 

 

공원은 기하학이다

 

두 손은 다정하고 

공사장 인부의 안전모가 빛나고

 

먼 네덜란드를 떠나온 튤립 구근은 

부산 시민공원 입구에 피어나

나비 떼처럼 흔들린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노란 튤립 사이로

수녀의 검정 치마가 흔들린다

 

은은히 불어오는 예감에

입술은 공기처럼 부풀어 오르고

튤립 봉오리는 미풍에 고개를 흔든다

 

벤치에 앉은 노인은 

아내의 손을 쓰다듬는다

감미로운 속삭임이 번지는 저녁

 

곁에 가만히 다가온 몸짓

누구일까,

계절을 기억하는 나선형 우주는 음악을 켜고

 

우리가 사랑한 붉은 튤립이

흔들린다, 기하학적으로

 

           - 다정한 사물들, 여우난골, 2021

 

 

 

 

 

 

* 부산 시민공원은 기하학적으로 잘 지어진 공원이다.

이런 공원에 머나먼 나라 네덜란드에서 구근을 사다가 심은 튤립은 기하학적인 감정을 준다.

꽃을 찾아 흔들리는 나비들, 노란 튤립 사이를 거니는 수녀들, 미풍에 고개를 흔드는 튤립 봉오리,

아내의 손을 쓰다듬는 노인의 손, 우리가 사랑한 붉은 튤립까지 모두가 기하학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의 마음에 다정한 감정을 가져다 준다.

봄이 한창일 때 튤립이 공원 가득 피어 이렇게 다정한 감정을 전해주니 다정이 다정을 더하고 다정한 공원이 된다.

기하학적인 감정이 어떤 것이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 다정한 손길, 은은한 눈길로 충만한 게 아닐까 싶다.

틀림없이 부산 시민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기하학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느리게 걷고 있을 것만 같다.

언제 튤립꽃이 피었다고 소식 주면 공원에 돗자리 두 장 펴놓고 빙 둘러앉아 시 한 편씩 나직히 읊조리고 싶어진다.

그런 풍경이 다정다정 그려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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