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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가위바위보 [김승]

by joofe 2022. 6. 12.

 

 

 

 

가위바위보 [김승]

 

 

 

 

이긴 사람이 한 잎씩

머리부터 떼어 내기로 해

그 다음은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그리고 양쪽 갈비뼈

두 다리마저 다 떼어내고

척추뼈만 남긴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

 

 

먼저 버리는 사람이 먼저 떠날 수 있는 세상

바람에 흩날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황홀함은

이긴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이파리를 다 떼어낼 때까지 아픔도 있겠지만

바둥바둥 붙어 있어 보아야 한나절인데

매미가 울기 시작하고

아지랑이는 고물고물

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기어오르는데

물 한 모금 없이 마른하늘을 쳐다보며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건 비참한 일이지

 

우리

그냥

하나씩 하나씩

가벼워지자

먼저 

 

           - 물의 가시에 찔리다, 실천, 2021

 

 

 

 

 

 

* 인간은 게임을 즐기는 동물이다.

물론 사자나 표범도 새끼들끼리 물고 뜯고 자빠뜨리며 장난을 친다. 그게 생존을 위한 연습게임인 셈이다.

인간은 좀더 고차원적이거나 재미를 가미한 게임을 즐긴다.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각국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만 해도 그 드라마 안에 많은 게임이 등장한다.

456명중에 단 한사람만 생존하는 게임은 좀 비정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느 개그맨이 말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인 것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지면 분하기도 하고 다음번엔 이겨야지 마음 먹으면 다음번 게임에서 분발하게 되고 이길 확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생존이 달린 게임이라면 그 치열함이란 사자와 하이에나의 전쟁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생활이 게임 하듯 경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선의의 경쟁이 되고 즐거움을 더하는 경쟁이어야 하지 남을 물어뜯고 짓밟으며 경쟁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시인이 '그냥 먼저 져주면서!'라는, 게임의 새로운 법칙을 제시하지 않는가.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보름이라고 토요일에 모여서 전도 부치고 떡도 나누면서 윷놀이를 했다.

아동부와 청소년부, 청년부, 장년부로 나뉘어 토너먼트 게임을 했다.

결승전에서 아동부와 장년부가 게임을 하는데 장년부는 말을 먼 길로 돌려서 아동부에게 져주었다.

아동들이 눈치를 챘을까 못 챘을까. '이 아저씨 엑스맨이야!' 영리한 아이가 외쳤다.

맞다. 기를 쓰고 아동부를 이겨서 뭘 하겠나.

무도 모르게 져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게다.

 

틀린 그림 찾기, 게임 한판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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