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황옥경]
월정사 전나무 숲길,
무릎이 꺾여 쓰러진 전나무를 보았다
거칠게 뜯겨져 나간 둥치의
텅 빈 속, 계곡을 향해 무너져 내린 우듬지에
연둣빛으로 돋아나고 있는 실생,
바람으로 생긴 상처자리를 바람이 쓰다듬고 있다
뿌리발 내릴 곳 찾아 떠도는
씨앗 하나 가슴에 품고 와
죽음의 자리에 생령의 기운을 떨구어
용서와 화해를 빌고 있다
둥치의 우윳빛 속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형상의 무늬 속
수천 수억의 유선, 어린 생명에게 젖을 물리는
전나무 둥치 속으로 한발 들어서니
머리 위에서 툭,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 탄자나이트, 푸른 멍, 문학아카데미, 2014
* 그저께 주말이라 망원시장을 다녀왔다.
마침 윤관영시인이 조그만 부대찌개집을 조금 더 넓은 가게를 얻어 옮긴 터라
소주 한 잔 할 겸 번개팅 비슷하게 하였다.
인파가 대단했고 줄서서 먹는 집들이 즐비한 곳이 망원 시장통이다.
일찍 가서 돈가스와 우동 파는 집이 줄 서 있길래 체면 구기고 서서 한참 기다린 끝에
돈가스와 우동으로 점을 찍었다.
팔천원 하는 돈가스는 큼직하고 잘 튀겨져서 가성비는 적당했다.
역시 사람이 많으니 뭘 해도 잘 될 것 같다.
'부자부대찌개'는 시장에서 강변쪽으로 가면 있다.
역시나 팔천원을 하는 부대찌개지만 라면과 밥이 무한리필이라 한창 먹을 나이의 청년들에게는 딱!이다.
윤시인 포함 셋이서 소주를 마시다 시 잡지 얘기가 나왔고
심상, 시안 등을 거론하다 '문학과 창작' 얘기가 나왔다.
한때 황옥경시인이 약 삼년 정도 내게 값없이 보내주었어서 황시인을 화두로 얘기 중에
윤시인이 황시인한테 전화 한 번 하라고 했다.
나도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전번이 있나 찾아보니 **카라님으로 남아있어 통화를 하였다.
나도 반가운 전화 통화하고 윤시인도 통화하고 '차나 한잔 하고 가게' 가 아니라 '전화 한번 하고 가게'가 되었다.
솔방울 하나 툭,하고 떨어지듯 황시인의 귓가에 전화 한통이 툭,하고 떨어진 셈이었다.
다들 취기가 있는 듯해서 부산에서 번개 한 번 치자고 마지막 잔 부딪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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