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두 발 다 들고 [권혁웅]
연포탕 속의 낙지가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냄비 바깥으로 손을 뻗는다 아니, 발이었나?
잠시 후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쫄깃한 육신을 탕 속에 흩뿌릴 테지만
그 전에 프리즌 브레이크
파이널 시즌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도 한 때,
그런 탈출을 꿈꾼 적이 있었지
멸치 육수가 흐를 듯 후덥지근한 솦속 빈터였다
뼈도 연골도 없이 그녀에게 매달렸지만
그녀가 앉은 벤치는
나박나박 썬 무처럼 너무 담백했다
우리 그냥 친구 하자고
우정이 애정보다 좋은 열두 가지 이유를 말하는
그녀의 입은 청량고추만큼이나 매웠다
냄비 속 연옥을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낙지는 마지막 먹물을 뿜는다
눈앞이 캄캄해진 내게
슬라이스로 썬 마늘을 투척하는 그녀
이게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네
우정과 정력의 모순형용 앞에서
후후 불며 나를 들이키는 그녀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파와 마늘 사이로 숨는 낙지와 나와 쑥스러운 쑥갓과
연포탕에는 그렇게뿐이 모여 있었다
- 실천문학, 2013 봄호
* 어느 대기업 오너가 랍스타를 먹기 전에
기도하듯이 랍스타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하고 먹었다고 한다.
별게 다 신문에 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별게 다 신문에 난다.
연포탕은 대개 살아있는 낙지를 끓는 탕에 넣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아마도 냉동 낙지가 아닌 싱싱한 낙지를 넣는다는 걸 인지케 하려는 수작이다.
괴로와하는 낙지를 눈앞에서 보며
와, 싱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야, 이거 너무 잔인한 아냐?,라고 말하는 두 부류로 나뉠 테다.
요리된 랍스타를 먹으면서도 미안하다 고맙다 하는데
살아있는 낙지를 눈으로 요리해 먹으면서는 정말 미안하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하면서 먹어야 하나.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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