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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두 손 두 발 다 들고 [권혁웅]

by joofe 2021. 10. 26.

리얼 연포탕 ㅠ.ㅠ

 

두 손 두 발 다 들고 [권혁웅]

 

 

 

 

연포탕 속의 낙지가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냄비 바깥으로 손을 뻗는다 아니, 발이었나?

잠시 후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쫄깃한 육신을 탕 속에 흩뿌릴 테지만

그 전에 프리즌 브레이크

파이널 시즌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도 한 때,

그런 탈출을 꿈꾼 적이 있었지

멸치 육수가 흐를 듯 후덥지근한 솦속 빈터였다

뼈도 연골도 없이 그녀에게 매달렸지만

그녀가 앉은 벤치는 

나박나박 썬 무처럼 너무 담백했다

우리 그냥 친구 하자고

우정이 애정보다 좋은 열두 가지 이유를 말하는

그녀의 입은 청량고추만큼이나 매웠다

냄비 속 연옥을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낙지는 마지막 먹물을 뿜는다

눈앞이 캄캄해진 내게

슬라이스로 썬 마늘을 투척하는 그녀

이게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네

우정과 정력의 모순형용 앞에서

후후 불며 나를 들이키는 그녀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파와 마늘 사이로 숨는 낙지와 나와 쑥스러운 쑥갓과

연포탕에는 그렇게뿐이 모여 있었다

 

                    - 실천문학, 2013 봄호

 

 

 

 

 

 

* 어느 대기업 오너가 랍스타를 먹기 전에

기도하듯이 랍스타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하고 먹었다고 한다.

별게 다 신문에 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별게 다 신문에 난다.

연포탕은 대개 살아있는 낙지를 끓는 탕에 넣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아마도 냉동 낙지가 아닌 싱싱한 낙지를 넣는다는 걸 인지케 하려는 수작이다.

괴로와하는 낙지를 눈앞에서 보며 

와, 싱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야, 이거 너무 잔인한 아냐?,라고 말하는 두 부류로 나뉠 테다.

요리된 랍스타를 먹으면서도 미안하다 고맙다 하는데

살아있는 낙지를 눈으로 요리해 먹으면서는 정말 미안하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하면서 먹어야 하나.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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