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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276

배춧국 [이상문] 배춧국 [이상문] 어머니는 삼시 세 끼 배춧국을 끓이셨다 어린 내 손 가락보다 굵은 멸치가 둥둥 떠오르던 된장 배춧국 가 난이 어떤 것인지 모르던 나는 어머니의 고단한 하루 도 모르는 채 반찬 투정을 했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 맛이 어때서 그러냐고 큰 소리 내지 않고 고개를 숙이 셨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로 정말 시원하다 정말 구수하다를 연발하며 늦어도 한참 뒤늦은 맞장 구를 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내가 이제 늙었다며 자 기는 아직도 고등어자반이 최고란다 정말 나만 늙은 것인지 모르지만 배춧국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안부 가 궁금하고 불러보고 싶어 전화를 하는 것이다. 어머 니 어떠세요 - 사랑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달아실, 2019 * 국밥집에 가면 첫숟갈에 국물맛을 보게 된다. 국물에서 .. 2022. 5. 5.
가짜 [허형만] 가짜 [허형만] 스님, 김남조 시인이 누님이시라면서요 옆자리에 앉은 오탁번 시인이 장난을 거신다 글쎄, 그게, 중이란 게 나이를 알지 못해서 큰 스님이 딴 청을 피우시다가 한 말씀 하시는데 나는 중 옷만 입었지 가짜 중이야 그 말씀이 끝나자마자 내 정수리가 뻥 뚫리는 듯했다 저리 큰 스님이 가짜 중이시라니, 그럼 나는? 가짜 교수? 가짜 시인? 어쩐지 요즘 육십 세월이 헐겁더라니 그날 밤 나는 오탁번 시인과 왕십리에서 대취했다 - 그늘이라는 말, 시안, 2010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씀하신 스님이 계셨다. 교수는 교수요, 시인은 시인인데 가짜가 워낙 판을 치는 세상이라 진짜들이 내가 가짜일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신신애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처럼 여.. 2022. 5. 5.
백조의 호수 [강영은] 백조의 호수 [강영은] 뜨거운 후라이팬 바닥을 휘젓는다 참깨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뒤꿈치를 드는 참깨, 무릎 구부리는 참깨, 한 다리 를 직각으로 펴는 참깨, 깨금발 군무를 시작한 참깨들이 〈백조의 호수〉무용수 같다 여기저기 작은 무용수들이 튄다 한 발이 올라가면 한 발 세상이 튄다 깨금발 세상이 튄다 발가락이 누렇게 타들어간다 뒤꿈치가 발갛게 벗겨 진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깨금발 세상을 들어 올리느라 일주일에 천 켤레의 눈물을 버렸다지? 천 켤레의 리듬, 천 켤레의 눈물이 허공을 휘젓는다 휘휘 돌아가는 깨금발 세상이 어지러워 나도 모르 게 한 발을 든다 왼발 오른발,번갈아 들며 리듬을 탄다 허공을 높이 찰수록 허공을 향한 몰입은 고소해지 는 걸까 두 발로 허공을 걷어차 본다 허공을 걷어차는 고난도의 연.. 2022. 5. 5.
전염성이 강한 병에 대한 처방전 [신미균] 전염성이 강한 병에 대한 처방전 [신미균] 내가 뱉은 공기를 네가 마시고 네가 뱉은 공기를 그가 마시고 그가 뱉은 공기를 가위꼬리딱새가 마시고 가위꼬리딱새가 뱉은 공기를 푸른점박이비단능구렁이가 마시고 푸른점박이비단능구렁이가 뱉은 공기를 껄떼기가 마시고 껄떼기가 뱉은 공기를 모쟁이가 마시고 모쟁이가 뱉은 공기를 마시면 안 됨 아무도 마시지 않았던 공기를 마셔야 함 *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온세상이 난리다. 메르스나 사스 때에도 마스크가 품귀가 아니었고 그냥 일반 독감으로 인식했었는데 이번 신종은 독해도 아주 독한 전염성이 강한 병이다. 농어의 새끼가 껄데기이고 숭어의 새끼가 모쟁이인데 그 어린 것들까지 병에 걸려 그 공기조차 마시지 말아야함,은 세상이 너무 좁아지고 복닥거린다는 말이다. 어제 우한.. 2022.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