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276 탤런트 김미숙 씨 [이상문] 탤런트 김미숙 씨 [이상문] 탤런트 김미숙 씨와 함께하는 저녁은 얼마나 행복한가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 그녀가 만들어주는 두 시간에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어도 즐거운 것은 배우라서가 아니라 나이 드는 것도 숨기지 않는 은근슬쩍 퍼져버린 그녀의 엉덩이처럼 온전히 인간적이고 싶은 시간을 조근조근 들려주며 음악으로 묻혀내는 사람의 향기 때문이다 규율에서 자유로의 시간 직선에서 곡선으로의 시간 은유에서 직유로의 시간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시간 의식에서 무의식의 시간 비가 내리고 낙엽이 지고 눈이 퍼붓고 꽃이 피고 구름이 슬쩍 우울을 드리우는 날에도 그 모든 것들이 되어주는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고구마를 구워야 할 것 같은 시간 불을 켜놓고 찌개를 끓여야 할 것 같은 시간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해줘야.. 2022. 5. 5. 너는 생필품 [서정학] 너는 생필품 [서정학] 감자 두 개와 한 줌의 쌀, 파 한 쪽이면 하루가 저 물었다. 계란 한 개에는 달콤한 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하루 치의 전기 요금은 운동장 한 바퀴를 땀 나게 뛰는 것으로 충분했다. 가끔식 비가 내렸고 바 람이 불었지만 쓰레기는 목요일 저녁 늦게나 치워졌 다. 발정 난 고양이들이 울어대는 화요일 골목에 가 로등이 켜지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엉켜 붉 고 뜨거운 배기가스를 뿜었다. 너의 손에 든 비닐봉 지가 부스럭거렸다.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자 우 유와 식빵 한 조각, 고기 한 근과 지루하기만 한 버 섯이 하루를 삼켰다. 월요일 아침은 떠들고 일요일 저녁은 조용했다. 화장실에 앉아 떨어지는 수요일을 보며 질 낮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었다. 걱정은 조미 료처럼 달콤하고 텔레.. 2022. 5. 5. 안목을 사랑한다면 [심재휘] 안목을 사랑한다면 [심재휘] 해변을 겉옷처럼 두르고 냄새나는 부두는 품에 안고 남대천 물을 다독여 바다로 들여보내는 안목은 한 몸 다정했다 걸어서 부두에 이른 사람이나 선창에 배를 묶고 뱃일을 마친 사람이나 안목의 저녁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방향은 밤과 낮이 달랐다 그때마다 묶인 배는 갸웃거리기만 했다 모든 질문에 다 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물이 끝나는 곳인가 물으면 그저 불을 켜서 저녁을 보여주는 안목 묻는 건 사람의 몫이고 밤바다로 떠나가는 배를 보여주기만 하는 안목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안목에게 묻지를 말아야지 불 켜진 안목을 사랑한다면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는 말아야지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 * 어떻게 살 것인가? 한참 고민하던 때는.. 2022. 5. 5. 지구인 - 고 사노 요코*에게 [문성해] 지구인 - 고 사노 요코*에게 [문성해] 돈이나 목숨 아끼지 말고 살다가 말년엔 두 달 남았다는 미남 의사의 말을 듣고 싶다 어차피 두 달 살건데 하며 저축해 둔 돈도 아끼지 말고 펑펑 쓰고 싶다 푸른 독일제 재규어 한 대 사서 추월로(追越路)로만 다닐 것이다 친구들에게 두 달 남았다고 하며 제일 좋은 옷과 가방도 벗어 줘야지 그러다 덜컥 두 달 넘어 살게 되면 미남 의사는 좀 난처 해지겠지 통장의 잔고도 바닥나겠지 그렇지만 나는 돈을 벌지 않을 것이다 난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으므로 햇볕과 비와 바람을 공짜로 쐴 것이다 무전취식을 할 것이다 경찰서에도 수시로 들러 미친 할마씨란 소리도 들을 것이다 난 남은 생을 바짝바짝 담배꽁초처럼 태워야지 목숨을 놓고 삶과 거래를 해야지 그러다가 자꾸 명이 길.. 2022. 5. 3.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