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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정선 몰운대 [전영관]

by joofe 2022. 1. 17.

 

 

 

정선 몰운대 [전영관]

 

 

 

 

나무와 사람은 슬픔의 속도가 다를 것

 

투신할 것도 아니면서

새들의 높이에서 아래를 보면

사랑의 문장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 같아

아프다

 

나무의 슬픔은

천 갈래로 몸이 갈라고 뒤틀리면서

백 년 동안 천천히 머무는데

어제의 상실과 몰락 따위를 한탄하였다

 

벼랑을 움켜쥐고 선 소나무는

몸피를 키우는 일보다

쓰러지지 않으려 뿌리만 더 굵어졌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것들이나 차지하려고 악력을 키웠다

건성으로 타인의 역경을 칭찬하듯

드러난 뿌리들을 감탄하였다

애련(哀戀)을 앓는 이에게 여기를 권하겠다

하늘을 우러르면 슬픔도 흩어질 것

백년 소나무 곁에 앉은 채로 풍장을 치러달라고

바람에게 부탁했다

 

     - 슬픔도 태도가 된다, 문학동네, 2020

 

 

 

 

 

 

 

 

* 언젠가 시사랑회원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날 거냐?" 물었다.

설문지의 한 문제였는데 의외로 나무로 태어나겠다는 사람이 많았었다.

드물게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가 모진 풍파속에 땅속으로 꿈틀거리고 바람위로 꿈틀거리며

엄청난 슬픔을 견디며 살고 있는데

사람은 그것을 꿈꾼다니 사람의 슬픔이 워낙 커서일까,

아니면 나무는 슬픔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질량불변의 법칙처럼 슬픔의 질량도 사람이나 나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좀더 나은 거라고 믿고 싶은 까닭은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일 때는 나이든 어른들이 신음소리 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늙으면 아픈 데도 많고 다치는 데도 많다.

그걸 나이 먹어서야 깊이 깨닫게 된다.

그게 슬픔이라는 걸 늦게 핀 꽃처럼 알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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