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날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부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서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던가
- 박남준 시선집, 펄북스, 2017
* 사는 일이 바빠서 삶의 한 굽이에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을 내어주었던가.
넉넉한 마음보다는 그렇지 못해 마음뿐이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이름도 아득해지고 모습도 희미해진다.
폰에 저장되지 않은 친구가 전화를 해오면 누구세요? 묻게 되고
간신히 이름을 기억해내서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지만
공감의 시간이 많지 않았던 친구일 경우에는 대화의 길이가 길지 않다.
품을 내어준 바위나 믿고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관계처럼
서로를 내어준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관계일 것이다.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몇이나 될까.
지금부터라도 품을 키워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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