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딴다'라는 말 [문성해]
연밥
물속에서 군불로 밥을 짓던 어머니가
한 그릇 두 그릇
허공에 밥을 올리신다
커다랗고 붉은 손바닥이 감싸올린 저 밥을
태초에 따던 하얀 손이여
태초에 벌판에서 벼이삭을 따던
여인네들 입속에 따뜻하게 고인 말도
이 '밥을 딴다'라는 말
까치가 고욤을 따듯
다람쥐가 도토리를 따듯
이 말은 밥이 밥에 더 가까워지는 말
털 숭숭 난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온 말
태초에 붉은 벌판에서 이삭을 감싼 따순 손바닥 두개여
혓바닥을 앞니에 씹듯이 떼어내며
'딴다'라는 말을 입속에 버무리던 이여
그는 일찍이 말을 지을 줄 아는 시인이 아니었을까
붉은 연꽃이 연밥을 허공에 싸안아 올리는 심정으로
태초에 밥 지은 솥을 머리에 이고 들판으로 들어가던 아낙이여
그이는 오소리보다 곰보다 큰 이의 어미가 되었거나
말을 짓는 시인의 어미가 되었을 것이다
연밥이 죄다 마이크 모양 솟아서 굽어져 있다
인근 마을에서
밥을 짓는 대신 밥을 따는 처자들이
굵은 모가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온다
-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2012
* 한때 약선음식이라 하여 사찰음식이 붐을 이루었었다.
그중 연잎밥집이 많이 생겨 다녔었는데
생각나는 두 집이 있다.
하나는 양산 물금이라는 곳에 '바루'라는 연잎밥집.
한옥으로 되어 있고 좁은 마당에 화초가 많았었고
방 하나 차지하고 퍼질러 앉아있으면
시리즈로 나오는 접시마다 맛있고 참신한 음식들이 참 좋았다.
두어번 간 기억이 나고 언젠가 또 가봐야지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한옥카페로 바뀌었다.
또 하나는 천안 태조산 기슭에 '니르바나'라는 간판으로
열 몇가지 나물과 구수한 된장찌개를 주는 연잎밥집이 있었다.
이 집도 깔끔하고 맛있어서 참 많이 갔었는데 역시나 문을 닫아버렸다.
이제 딱히 연잎밥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많이 아쉽지만
종로 조계사 근처에 '발우공양'이라는 밥집에서 연잎밥을 선식으로 맛볼 수 있다.
이 집은 가격이 꽤 나가는 관계로 마음에 점을 찍을 때만 간다.
밥을 딴다는 것은 밥을 짓는다는 것이고
밥을 짓는다는 것은 시인이 시를 짓는 것과 같다.
아니, 어쩌면 집을 짓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랑을 만드는 것,
사랑을 이어주는 것.
사랑을 담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 관통하는 것이다.
연잎밥집,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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