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틀리는 맞춤법 [한연희]
일기 속에 오늘을 틀리게 써넣었다. 언니는 자주 모서리에 부딪힌다 나는 현명하다 골목은 흔한 배경이다 옆집 개는 죽는다 똥개야 살지 마 언니야 던지지 마 휘갈겨 쓴 문장들을 언니는 몰래 훔쳐 읽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낮은 계단에게나, 새는 물컵에게나, 쭈그려 앉은 개에게나, 길 한복판에서 내게. 너는 왜 늘 네 멋대로니?
곧 바뀔 거라고 믿은 빨강은 멈췄다. 행인들이 그냥 건너가버렸다. 언니가 틀렸다. 나는 운이 많은 아이니까. 셋만 세면 언니가 다시 돌아올 거니까. 나는 숫자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사거리에서 언니가 뒤돌아봤다. 내가 알고 있던 언니는 없었다. 언니야 괘찬지마 언니야 도라오지 마 어떡게 어떻해 멈추지 마
건너편 간판엔 각종 찌개 팜니다 어름있읍니다 나으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옳바른 행동교정 이상한 글자들이 좋았다. 내 이야기가 비뚤어질수록 좋았다. 아무도 날 교정하지 못하는 게 좋았다. 정답과 멀어진 내가 좋았다. 틀린 간판은 어디에든 걸려 있고. 언제든 글자를 거꾸로 읽을 수 있으니까. 사라진 언니를 떠올리는 대신 오늘의 날씨를 읽었다.
맞춤법은 틀렸어, 기상예보는 틀렸어, 앨리스가 틀렸어, 대통령은 모르지, 언니가 옳았지, 백과사전이 옳았지, 철학자마저 옳았지, 그러니 내가 틀렸어, 뭐가 틀렸는지 몰랐고 아무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옳았어, 틀렸으니까 모르고 모르니까 웃기고, 불가능하게 구름이 툭 떨어져버리고, 꽉 막힌 도로에 싱크홀이 생겼다. 이제 나는 영영 틀린 사람이 되었다.
- 2016년 제 16회 "창비" 신인상 수상작중에서
* 한때 교지를 만든다고 빨간 색연필을 들고 원고지를 찍찍 긋거나 돼지꼬리땡땡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 버릇 때문에 늘 누군가 맞춤법이 틀리면 그게 눈에 거슬리곤 했다.
물론 오타와 맞춤법은 다른 것이다.
오타는 자판을 빨리 두들기고 한번 훑어줘야 하는데 내버려 둔거고
맞춤법이 틀린 것은 머릿속에 각인된, 잘못된 단어를 쓰는 것인데
그러나 맞춤법은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었다.
허섭스레기를 허접쓰레기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쓰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국립국어원이 둘 다 맞춤법에 맞다라는 거였다.
이런 젠장, 그동안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유식한 사람이 되다니!
단어라는 게 그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다.
황당무계하다,란 말은 있어도 황당하다,란 말이 내가 가졌던 국어사전에 없었는데
황당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니까 어느 순간 국어사전에 황당하다,라는 낱말이 등재되기 시작했다.
친구가 더불어,를 늘 더블어,라고 써서 점 빼는 시술을 하나보다 했는데
이제부터는 굳이 틀리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나도 가끔식 틀린 맞춤법으로 틀리게 써야겠다.
나도 영영 틀린 사람이 되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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