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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윤곽 [혜원]

by joofe 2022. 1. 29.

 

 

 

윤곽 [혜원]

 

   

 

당신은 손의 윤곽이 열쇠와 닮아서 아침에 손을 떨어뜨린 사람

 

내 손은 정오의 구멍처럼 환하고

V자로 깎아 낸 아홉 개의 벤 자리와 여덟 개의 이가 있는 당신의 열쇠는

부드러운 곡률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쉽게 통과하네

타인의 주머니에 쉽게 손을 맡기고

 

열쇠를 만지듯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백 년 동안 열쇠가 녹고 있지

 

녹은 자리가 예뻐서

당신이 또 손을 어루만지면

 

너무 헐거워

 

당신은 한 번도 내 손을 열지 못했지

다른 손이 필요하다고 믿었지

윤곽이 녹아서

 

백 년 동안 열쇠만 깎았지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최선을 다해 손을 오므렸던 일

 

손을 펴면 열쇠의 깎은 자리가 사라지고

내 주머니에서 손이 사라지고

 

주머니에 타인의 열쇠가 가득하네

 

어느 날 모르는 손 하나를 쥐면

자물쇠의 깊이만큼 긴 구멍이 생겼지

          - 2022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시

 

 

 

 

 

* 인간관계는 희미한 상태로 맺어지고 오랫동안 만지고 만져서

윤곽이 또렷해져야만 열쇠가 되고 자물쇠가 되어 합을 이룰 수 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렇다.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자주자주 스킨십을 해야지 멀다고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 합을 이루지 못한다.

내 손이 당신 손을 잡지 않으면 따뜻함을 느낄 수 없기때문이다.

 

오늘부터 오일동안의 설 연휴가 시작된다.

멀리서 오는 자식도 있고 가까이에서 오는 자식도 있을 것이다.

안아주고 안아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또 한해를 잘 지낼 것이다.

모처럼 사랑을 만져보고 사랑의 윤곽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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