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혜원]
당신은 손의 윤곽이 열쇠와 닮아서 아침에 손을 떨어뜨린 사람
내 손은 정오의 구멍처럼 환하고
V자로 깎아 낸 아홉 개의 벤 자리와 여덟 개의 이가 있는 당신의 열쇠는
부드러운 곡률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쉽게 통과하네
타인의 주머니에 쉽게 손을 맡기고
열쇠를 만지듯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백 년 동안 열쇠가 녹고 있지
녹은 자리가 예뻐서
당신이 또 손을 어루만지면
너무 헐거워
당신은 한 번도 내 손을 열지 못했지
다른 손이 필요하다고 믿었지
윤곽이 녹아서
백 년 동안 열쇠만 깎았지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최선을 다해 손을 오므렸던 일
손을 펴면 열쇠의 깎은 자리가 사라지고
내 주머니에서 손이 사라지고
주머니에 타인의 열쇠가 가득하네
어느 날 모르는 손 하나를 쥐면
자물쇠의 깊이만큼 긴 구멍이 생겼지
- 2022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시
* 인간관계는 희미한 상태로 맺어지고 오랫동안 만지고 만져서
윤곽이 또렷해져야만 열쇠가 되고 자물쇠가 되어 합을 이룰 수 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렇다.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자주자주 스킨십을 해야지 멀다고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 합을 이루지 못한다.
내 손이 당신 손을 잡지 않으면 따뜻함을 느낄 수 없기때문이다.
오늘부터 오일동안의 설 연휴가 시작된다.
멀리서 오는 자식도 있고 가까이에서 오는 자식도 있을 것이다.
안아주고 안아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또 한해를 잘 지낼 것이다.
모처럼 사랑을 만져보고 사랑의 윤곽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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