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혼자 공중에서 오래 우는 이가 있다 [조영란]
불 꺼진 지 오래
누군가 날 잊는다 해도 서러워할 일은 아닌데
먼 데서 풍경이 운다
아슬아슬한 바람에게
담보도 없이 덜컥 주어버린 웃음이
허공에 눈물을 매달아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기어이 풍경이 운다
침묵을 부르는 소리도 있다
절규란 그런 것,
전부였지만
전부를 걸 수 없어 혼자 흐느끼는 소리의 집
바람은 단지 지나갈 뿐인데
체온을 잃고
저 혼자 공중에서 오래 우는 이가 있다
기억할 처음이 없다는 건
기약할 다음도 없다는 것
돌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어
스스로 제 낡은 몸을 떨어뜨리는 눈물
녹슨 풍경에게
묻는다
왜 울었을까
왜 울었을까
- 나를 아끼는 가장 현명한 자세, 시인동네, 2020
* 지금 사는 집은 47층 아파트의12층이다.
내 윗집들은 나처럼 고소공포증은 없는 걸까.
나의 경우엔 12층도 아주 높아서 공중에 떠서 밥을 먹고 공중에 떠서 잠을 자는 것 같다.
오랜만에 서울을 갈라치면 한강을 두고 공중으로 빙그르르 올라갔다가 돌아돌아서
한강다리를 건너게 된다.
공중을 나는 새도 아니고 거미줄에 걸린 거미도 아니고
아뭏든 공중에서 정신이 혼미하게 산다.
인간은 태어날 때 울면서 세상에 나온다.
살기 위해 우는 것이지만 한몸에서 떨어져 고독한 혹은 독립된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다는 게 마냥 웃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울다가 웃으면 학문(!)이 어떻게 된다고들 하던데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공중부양한 채 살아간다.
산다는 게 늘 함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화목하고 즐겁고 때로는 외롭고, 슬프고, 괴롭고,아프고
희노애락의 삶을 산다.
중요한 건 세상을 떠날 때다.
울면서 떠날지 웃으면서 떠날지 혹은 잠든 채 떠날지......
왜 울었을까, 묻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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