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덕목 [황옥경]
문배마을로 가는 임도에서 불독사를 만났다
붉은 몸 둥글게 또아리를 틀고 햇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잿빛 바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유유자적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호들갑스러운 외침에 눈을 뜬 불독사,
누홍초 같은 혀를 날름거리다
또아리를 풀고 머리를 곧추세운다
유유히 몸 풀어 주위를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 불독사가 쩍, 입을 벌린다
흠칫 뒤로 물러서는 나를 보고 싱긋 웃는 듯하더니
미동도 않고 내 눈을 들여다본다
자유롭고 당당해야 한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눌리지 않아야 한다
시인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
문배마을로 가는 임도에서 만난
불독사 시인,
시인의 덕목德目, 제1장 1항을 온몸으로 강론한다.
- 탄자나이트, 푸른 멍, 문학아카데미, 2014
* '시인은 독사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꿰뚫으며 통찰해야 한다'는 게 황옥경시인의 지론인 듯하다.
반드시 시인만 그래야 하는 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그래야 할 게다.
또아리를 틀어야 할 땐 틀지만 풀어야할 땐 풀어야 한다.
통찰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덕목이란 덕스러운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니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덕목이 더 커야 한다는 말이다.
어젠가 티비를 보다가 LA폭동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한국상점만 털리고 불에 탄 이유가 한국인의 억척스러움과 교만한 눈초리때문이었다고 한다.
가난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악착같이 일만 했던 것은 이해가 가지만 더 가난한 흑인들에게는
그게 너무 싫었다는 것이다.
유유히 몸 풀어 주위를 돌아보는 톨레랑스도 필요하다는 게다.
시인의 덕목은 우리 시민(詩民)의 덕목이기도 하다.
자유 정의 진리와
지성 야성 감성과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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