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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시선들 [최문자] / 새는 날아가고 [나희덕]

by joofe 2022. 2. 10.

시선들 [최문자]

 

 

 

 

아까부터 

사과들이 나를 쳐다보네

나는 딴 생각 반, 사과 생각 반으로 보는데

사과나무는 온 사과들을 다 데리고 나를 보네

사과 사이사이에 새가 있네

울어 줄 새를 안고 살았나 보네

어쩌다 새의 작은 눈알과 마주쳤네

새까지 고집스럽게 나를 쳐다 보네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네

사과가 없어진 나를 보네

뻥뻥 구멍 뚫린 나를 보네

누구와 누구가 사과를 다 따 갔는지 의심하며 보네

내가 놓아 버린 사과들을 찾고 있네

사과 뒤에서 달이 뜨고 있네

알알이 불을 켜고 나를 쳐다보네

이대로 둘까 어쩔까

그런 생각으로 쳐다보네

사과들이 방패를 뚫고 나를 찌르네

사과와 새와 달빛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나를 죽이네

사과 무덤에 내가 묻히네

새가 무섭게 울고 있네

 

        - 사과 사이사이 새, 민음사, 2012

 

 

 

 

새는 날아가고 [나희덕]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아직 깨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들을 삼키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 그녀에게, 예경, 2015

 

 

 

 

 

 

* 하루의 일과가 곧 직업이다.

사과를 깨물어 먹듯이 일을 한다.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다 헤어지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

잠 자는 시간을 빼면 나머지 삼분지일은 일을 하기 위해 출근 퇴근을 하고

쓸모없는 시간이거나 휴식의 시간이다.

불멍처럼 시간멍을 때리는 시간은 휙휙 지나간다.

십년전의 나는?

지금의 나는?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사라지는데,

멍 때릴 시간도 없는데 십년 뒤의 나는?

 

제약회사를 다녔던 형은 갈적마다 건강하라고 약을 많이 준다.

십년 전의 나는 축구도 하고 등산도 했지만 

지금은 걷는 것, 자전거 정도만 한다.

약도 많이 먹는 편이다.

십년 뒤의 나를 생각하며 시퍼런 파도멍을 때리러 동해를 가야 하나.

아니면 고요한 산사에 가서 흙길을 걸으며 상념에 잠겨야 하나.

문득 십년 뒤의 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