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借景 [박주하]
마디 굵은 저 나무는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있으나
너른 들판에 선 듯 튼실해 보이지요
정원의 흙이 내심 속속들이
뿌리에 깊이 연루되어버린 곡절이랄까
뿌리가 흙인지
흙이 뿌리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세월이
허공으로 줄창 뻗어 나가
새들을 부르고 있으니
생은, 서로의 풍경을 앙물고 숨 쉬는 것
그대는 내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빌어온 가을 풍경이었나 봅니다
휘어지기 위하여 속을 비운 갈대를
꺾어놓고 외면했던
피가 돌지 않는 사연이랄까
내가 그대인지
그대가 나인지 헤아리기 분주했던
숨 막히는 그늘 속에선 아직도
저수지의 시간들이
처절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차가워진 저녁의 몸으로는
차마 그대를 안을 수 없었습니다
- 숨은 연못, 세계사, 2008
* 생은, 서로의 풍경을 앙물고 숨 쉬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는 풍경이 되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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