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버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 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 공손한 손, 창비, 2009
* 빨간 화이바를 쓴 여인, 앵두.
앵두에 관한 기억은 두가지다.
하나는 일천구백팔십사년 군복무 시절, 알파포대 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아마 유월말쯤이 아닌가 싶은데 누군가 다 따가지고 나누어먹고
내꺼를 따로 봉지에 담아다 주었다.
피엑스에서 싼 소주를 사서 앵두주를 담았던 기억.
빠알간 앵두주는 빛깔이 참 고왔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아마 누군가에게 주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화곡동 단독주택에 살 때 앵두나무가 담장을 이루고 있었다.
동네사람들도 손에 닿는 건 따먹었고
담장안에서는 내 삼남매의 소일거리였다.
지금도 아이들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소중한 추억을 가지게 한 빨간 화이바를 쓴 여인 얘기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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