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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상처 입은 혀 [나희덕]

by joofe 2022. 3. 8.

고흐의 그림

 

 

 

 

 

상처 입은 혀 [나희덕]

 

 

 

 

너는 혀가 아프구나,

어디선가 아득히 정신을 놓을 때

자기도 모르게 깨문 것이 혀였다니

아, 너의 말이 많이 아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하고 싶었던,

그러나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흘러가버린,

그 말을 이제야 듣게 되는구나

고단한 날이면 내 혀에도 혓바늘처럼 돋던 그 말이

오늘은 화살로 돌아와 박히는구나

 

얼마나 수많은 어리석음을 지나야

얼마나 뼈저린 비참을 지나야

우리는 서로의 혀에 대해 이해하게 될까

 

혀의 뿌리와 맞닿은 목젖에서는 

작고 검고 둥글고 고요한 목구멍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말이 말이 아니다

 

독백도 대화도 될 수 없는 것

비명이나 신음, 또는 주문이나 기도에 가까운 것

 

혀와 입술 대신

눈이 젖은 말을 흘려보내는 밤

손이 마른 말을 만지며 부스럭거리는 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아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이생에서 우리가 주고받을 말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러니 네 혀가 돌아오더라도

끝내 그 아픈 말은 들려주지 말기를

 

그래도 슬퍼하지 말기를,

끝내 하지 못한 말은 별처럼 박혀 있을 테니까

 

         - 그녀에게, 예경, 2015

 

 

 

 

 

* 엄마는 말을 안듣는 딸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다.

"너, 이담에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

모녀가 이 말 한마디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평생을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런데 DNA가 같으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딸이 커서 엄마가 되어서 엄마랑 똑같은 삶을 사는 게 아닌가.

독설했던 엄마도 결국 엄마의 엄마에게 그 독설을 들으며 살았을 거다.

세습할 게 이런 것 밖에 없었을까.

혀가 혀를 낳고 그 혀가 또 혀를 낳지만 그 혀가 그 혀라니!

 

"딸아, 너는 너의 인생을 살거라. 너는 참 예쁘구나. 예쁘게 살거야!"

이 말 한마디를 별처럼 박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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