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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상수리나무 [안현미]

by joofe 2022. 3. 6.

 

 

 

 

 

상수리나무 [안현미]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사는 게 바빠 지척에 두고도 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 상수리나무라는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 갔지 고독인지 낙엽인지 죽음인지 삶인지 오래 묵은 냄새가 푸근했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날 죽음이 다음이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배봉산 근린공원에 갔지 바퀴 달린 신발을 신은 아이는 바퀴를 굴리며 혼자 놀고 있었지 어차피 잠시 동안만 그렇게 함께 있는 거지 백 년 후에는 아이도 나도 없지 상수리나무만 홀로 남아 오래전 먼저 저를 안아버렸던 여자의 젖가슴을 기억해 줄 테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날 그곳에 갔지 직립의 고독을 만나러 갔지 죽음이 다음이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상수리나무를 만나러 갔지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창비, 2014

 

 

 

 

 

 

* 흔해빠진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물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종류도 참 많던데 아뭏든 산에는 흔해서 다행이다.

다람쥐가 굶어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참 많아서 참나무, 참 많아서 참새......

참으로 흔해빠진 것들이 많아야 산다. 굶어죽지 않고 산다.

 

너무 많다고 도토리 주워 묵 만들어 먹진 말자.

다람쥐가 홀쭉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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